**문화.예술** (504) 썸네일형 리스트형 태백산맥(3)...제 1부 恨의 모닥불 "빼앗긴 자가 빼앗으려는 욕구나 빼앗은 자가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구가 본능적이긴 마찬가지다.그러나 그 본능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빼앗긴 자의 본능이 생존권 선언이라면 빼앗은 자의 본능은 재산권 옹호였다." -294쪽에서-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에 저촉이 되었다는 취지로 작가가 불려 다녔다는 사실은 책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익보다는 좌익에 가까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적인 상황이 작가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이리라. 지주들의 횡포를 이기지 못한 소작농들. 그들이 겪었을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도저히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이 선택한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먹고 살 수 있다는 공산주의. 조정래 작가의 필력은 3권에서도 강하다. 그의 이야기는 속도감과 .. 고산윤선도유적지 이곳 고산 윤선도 유적지는,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촬영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감독... 김용균주연배우... 수애, 조승우조선 말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나라를 지키려는 명성황후와 그를 사랑한 호위무사 "무명"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라고 합니다. 고산 윤선도 유적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09:00~1800*어른 2천 원, 청소년 군경 1,500원, 어린이 1천 원. 종가에 전해지는 맛!종가음식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채과도 윤선도의 시문학과 공재 윤두서.1~25대까지의 자료와 문화유산 보물.종부들의 글 등 약 5천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해남윤 씨 족보목판 해남윤씨 족보 (네이버 사진)고산의 친필 어부사시사(보물 제48호로 지정) 고산사당 비자나무 숲 녹우당은 현재 해남 윤..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달마산 미황사 일주문.해남의 금강산이라고 일컫는 달마산의 서쪽,한반도의 가장 남쪽 끝에 자리한 사찰~미황사!! 도솔암 주차장에서 미황사까지 가는 등산로가 있었어요. 4.7Km...산을 타는 일은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좋은 경치가 있더라도 가지 못했습니다.도솔암을 보고 미황사 경내까지 차로 20여분 걸렸는데요.이미 저는 다른 분의 블로그를 통해서 "미황사"를 알고 있었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그래서 버스가 하루 4번밖에 가지 않는 교통이 불편한 곳임에도 불구하고,불자들이 꾸준하게 찾는다는 이 아름다운 절을 보고 왔답니다. 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베푸는 넉넉한 절이라는 것.그리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스님께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태백산맥(2)...제 1부 恨의 모닥불 '혁명의 최대의 적은 센티멘털리즘이다'염상진의 웅변이 그를 채찍하고 있었다.자식이 부모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도 센티멘털리즘일까.(177쪽. 안창민이 자신의 집을 지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동물이란 무엇인가. 굶주림 앞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동물과 다름은 무엇일까. 시한부적 배고픔도 이리 견디기 어려운데 연속적인 굶주림은 얼마나 큰 형벌인가. 가난한 사람들. 아무리 몸부림쳐도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짜인 사회구조에 얽매어 있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인내심이 강한 것은 아니다.사회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소수 부류들이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잔인한 것이다. (232쪽. 김범우가 말먹이 깻묵을 훔쳐 먹고 들켜서 매타작을 당하고 열흘을 누워 있으며 .. 태백산맥 (1)...제 1부 恨의 모닥불 조정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많은 다른 글에서 우리 현대사를 보았지만 그 사람처럼 사실감 있게 보여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아직 1권에 불과한 서평이지만, 자칫 작가가 좌익이 아닐까 의심을 받을 만큼 책의 내용은 공산당을잘 알고 공산당들의 활약상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는데,실제로 이 소설 연재가 끝나고 국가 보안법에 저촉되는 글을 썼다 하여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항상 뺏기고 속는 이 책에 나오는 빨갱이들은 너무나 선하고 순진한 민초였는데,사람대접도 못 받는 억울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 소설은..... 이념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자신들이 믿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 사람의 안과 밖을.. 경복궁의 건천궁(6)...경복궁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명성황후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건청궁입니다.역사를 잊고 사는 것.또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 생각납니다.명성황후가 칼에 서 너 차례 찔리고,옷이 벗긴 채로 능욕을 당하고 끝내 불태워 졌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이제 경복궁에 대한 글을 마무리합니다.제게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건청궁은 "하늘이 맑다."는 뜻이 들어 있고, 향원정 바로 뒤에 있었어요.경복궁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건천궁은,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며 거처할 목적으로 지었답니다. 필성문장안당 외곽문외국인 관광객이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지요?"처음에 공부를 시직했을 때에는 그들과 너무 달라서 놀라고공부.. 경복궁 향원정과 집옥재일원 (5) 경복궁 향원정. 집옥재.건춘문. 영추문과 세자가 머물던 자선당과 비현각입니다. 경복궁 향원정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누각(樓閣). 2012년 3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복궁 건청궁 남쪽에 위치한 누각(樓閣)으로, 누각은 사방의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여러 층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말한다. 전각의 명칭인 '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간다.'라는 뜻으로,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 ~ 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참고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고종이 직접 썼다. 1885년(고종 22) 즈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잘 남아있다. 향원정의 연못을 건너는 다리인 취향교는 6.25 전쟁 당시 훼손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으나,.. 경복궁 소주방 일원(4) 경복궁 내 ‘궁궐의 부엌’ 소주방(燒廚房)이 4년여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2015년 5월2일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1915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지 100년 만에 복원이 되었는데요.소주방은 드라마 ‘대장금’에서 상궁들이 음식을 만들던 장소로 수라상을 비롯해 왕실 잔칫상을 만드는 궁중 요리원을 말합니다.대전의 동쪽이면서 동궁 북쪽의 넓은 공간에 위치한 경복궁 소주방은 외소주방, 내소주방, 생물방 등 3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생물방의 모습입니다.생물방은 임금의 후식과 별식. 왕가의 친척이나 손님이 왔을 때,생과 숙실과,조과,차, 화채,죽등을 만들어서 올리던 곳이예요. 고종시기 1887년 건기 재현 사찬상 고종시기 1874년 건기 재현 사찬상 밥상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