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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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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월드컵공원의 아침산책 집에서 출발하여 20분이 지났습니다.아침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입니다.    여기도 어김없이 6월의 꽃들이 만개하였습니다.꽃들 참 예쁘지요?    멀리 월드컵경기장의 지붕이 보입니다. 저는 이 길을 거의 매일 걷습니다. 걸으면서 생각합니다.쫓기지 않는 삶!!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광천변의 물은 정화되어 깨끗했는데,요즈음 경의선 복선 지반 공사로 흙탕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건너편은 마포구 성산동인데,엊그제 호호님댁에서 본 측백나무가 저기에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가로수로 측백나무가 이렇게 훌륭한지 호호님 덕분에 처음 알았습니다.    월드컵경기장 입구입니다.월드컵 상징인 공이 우뚝 서 있습니다.     풋볼 경기장입니다.  웅장한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아침이라 사람들이 아직..
풍습이 다른 결혼식. 신부의 부모님이 한국에 온 것은 결혼식 열흘 전이었다.아무리 기다려도 신부 측에서는 혼수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고,결혼은 점점 다가오는데 속이 탄 신랑 측  부모님은 혼수 일체를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신랑은 아직 취직 전.취직을 하면 결혼식을 시킨 다했는데, 한국에 혼자 나와 있는딸이 못 미더워 결혼을 서두른 쪽은 신부 측.누구누구 할 것 없이  예단은 다 그만두더라도신부가 신랑에게 양복 한 벌도 해 주지 않았다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닌가.   원래 예단이란 좀 변질이 되어서 그렇지.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이다. 버선, 양말 한 켤레라도 인사로 주고받는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다.나는 개인적으로 결혼을 얼마 얼마의 가치로 환산하는 데는정말 반대한다. 그저 인사로 형편대로 성의를 표하면 된..
[스크랩] 노무현 전(前) 대통령을 추모하며. 이제는 평안하신지요? 아무런 근심도 고통도 없는 곳으로 가셨는지요? 주말이면 지쳐가는 심신을 달래보고자 가끔씩 찾아가는 채마밭에서 지기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님의 유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설마 했지요. 그러나 라디오의 뉴스를 접하고서야 그것이 현실임을 알았습니다. 망연자실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누가, 무엇이 님에게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는지요? 당신의 정적들이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양심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었습니까? 만약 죽음으로써 당신 자신의 부끄러움을 지키고, 잘못을 저지른 당신의 주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당신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심으로써 관련된 모든 수사를 종결..
블로그의 첫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  당신을 사랑합니다.  ** 제 블로그가 첫 생일을 맞았습니다.분위기가  우울한 때에 맞은 생일이라 좀 조심스럽습니다.그래서 꽃과 케이크를 가장 소박한 것으로 골랐습니다.   이제는 꿈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제게어느 날 다가 왔던 소중한 분들과의 만남이이제는 제 미래가 되었고, 소망이 되었습니다.  삶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아슬아슬합니다.걱정이 없는 날이 없지요.모두 부족함 뿐이구요.내일을 가늠할 수 없어서 늘 흔들립니다.이런 제게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지요.돌아보면,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아름답게앞에서 뒤에서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돌이켜 보면 당신의 미소는 제가 평생 가지고 싶어 했던 미소였습니다.당신을 사랑합니다.이제 저도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 가려..
전직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했을까 하구요. 칡을 캐고, 진달래꽃을 따며, 바위를 오르내리던어린 시절로 돌아 가서 자연과 살겠다던 그 분.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참 관대합니다.죽기 전에 이해와 배려를 했어야 했는데...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 분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 아닐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통 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소서!!
우리집 셋째 딸 *  우리 집 셋째 딸* 유난히 교육열이 높으셨던 친정아버님은공부에 취미가 없고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셋째 딸을그 옛날에 과감하게 바이올린 공부를 시키셨다.당신 나름대로 훌륭한 사람을 만드셨다고 생각하셨는데...어느 날 갑자기 학벌도 직업도 외모도 마음에들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하니 너무 속이 상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을 반대했던 사위가 엊그제 친정어머니 제사를모신 사람이다. 자기를 그렇게도 무시했던 장모님과 장인어른을그는 참으로 극진하게도 모신다.  미워할 만도 한데.... 싫어할 만도 한데.....그래서 세상일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하는 걸까?  말단 공무원이었던 그는 "공무원의 꽃"이라는 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였고, 의정부 ㅇㅇ중학교 교무부장이자 음악교사인 동생과 더불어아들 딸 ..
우리들만의 제사법 내일로 다가 온  친정어머님 첫제사를 결혼한 셋째 딸이 모시기로 했다.어차피 아들이 없고 살아 생전의 상황과 변함이 없으니.큰 딸은 기독교인이며 환자이고, 둘째 딸인 나는 시부모님이생전에 계시니 어렵고, 비교적 자유로운 셋째 딸이 지내기로 한 것이다.제부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부모도 싫다 하는 세상에장모님까지 모신다고 하니 이 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  어머니를 모신 화천의 법장사에서 제사를 지내자고 했는데. 학교에 근무하는 두 딸이 수업등의 이유로 일찍 시간을 낼 수 없고,더 중요한 것은 절에서 늦은 시간에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한다.절에 잠깐 모여서 이내 헤어지는 것보다는 따뜻한 진지 한 그릇이라도직접 손으로 해서 올리는 일이 더 옳은 일 같다.아버지께서도 상황을 고려하셔..
돌아 가신 어머니 1주기에 부쳐 *  어머니 1주기에 부쳐 *  나무 아래 묻혔다는 표시로 꽂아 놓은 소나무 가지 하나.지난 4월 아버지께서 심어 놓으신 빨간 철쭉.잘 뻗은 나무는 누군가 베어 갈 것이라며, 선택한 못 생긴 붉은 소나무 한그루.  너무 초라하기만 한 어머니의 흔적 앞에서네 자매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화장을 모신 후, 납골당에 모시자는 딸들의 의견을 무시한 것은 아버지이셨는데, 아들이 없는 아버지께서는 바쁘게만 살아가는딸들을 위해서 산에 유골을 뿌리자고 하셨었지요.아버지댁에 오가면서라도 한 번씩 들르자는 의견을 모아 그렇게했는데, 아무리 딸들이지만 이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늘 가셨던 화천의 법장사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모셨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합니다.   평소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