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가족. 일상 (270) 썸네일형 리스트형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네! 오늘아침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일어 나지 못하는남편을 보면서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고생각했습니다.약골이지만 병원을 모르고 산 사람입니다.어제 내과에서 지어준 근육이완제도별 차도가 없는지 한의원에 가서침을 맞았습니다.그래도 쉽게 나을 것 처럼 보이질 않네요.내일은 내과에서 초음파검사를 해보자 했다네요.이래저래 걱정이 됩니다. 거침없이 살아온 세월!!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듯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편의 성성한 흰머리들.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가는 세월을 바라만 보지 않으려고.지켜만 보지 않으려고.무수히노력했지만 늘 자기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았건만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감싸주고,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면서 살아야지. 항상 마음만 그렇습니다. 아이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지난번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그곳 사장님이 우리 딸을 보고 4학년이니취직을 했느냐고 물었다. 옆에 있던 내가 얼른 "요사이 4학년 학생에게 취직했느냐는 말이 가장 실례라는 걸 모르시나봐요.호호.." 하고 말았다. 2층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 살이 되도록 놀면서도 신문사 기자와 결혼했지.그러나 그 언니는 아버지가 재력가여서 할 수 있었던 거고. 6층의 두 언니들은졸업 후 인턴을 거쳐서 광고회사에 취직했는데 좋은 학교에, 실력을 갖춘 거고.두 이모들도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력 끝에 인정받고결혼도 잘한 거고. 결혼은 저울로 달아서 똑같은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고..........요사이 직업도 없는 여자를 누가 데려 가느냐고. 신데렐라 같은 것은 꿈도 꾸지말아야지. 세상이 .. 유로 (EURO) 주가 폭락. 금리 급등.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 고조. 유럽증시 하락. 경기침체 우려 계속.아이슬란드 IMF 긴급구제금융 지원 1위가 될 듯.. 미안해.. 외마디 남기고 주부 자살....매일매일 신문과 인터넷에 올라오는 무시무시한(?) 기사에 주눅이 드는 건 서민뿐...경제위기 때마다 부자는 더욱더 부를 늘리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며, 사회와 직장으로부터 소외된 가장들이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립니다. 평범한 아줌마가 뭐 그리 경제지식이 있겠습니까만, 조금은 피부에 와닿습니다.지난여름, 저는 대학 4학년인 딸을 독일에 여행겸 쾰른대학의 교수님께 레슨을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1유로가 천원이 조금 넘었고 그다지 부담이 없었으니얼마의 돈을 유로로 바꿔 주고, 나머지 돈을 시티은.. 추억 (낙엽) 단풍잎 말려 가며,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테두리를 만들어 가며 일기도 쓰고, 시도 적어 가며 문학소녀를 꿈꾼 적이 있었다. 돌아 보면 우습기도 하고 내 성장과정이기도 했었다. 전혜린처럼 우수한 두뇌의 여자에게 빠진 적도 있고,칼릴지브란이 몹시 좋았던 적이 있었으며,까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에 빠져서 지낸 적도 있었다.한때 심리학과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아 카운슬러같은 직업이 나에게 참 맞을거란 생각을 한적도 있다.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삶은 늘 어제보다 오늘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이 많다.이룰 수 없던 꿈에 대한 미련에 가슴이 아린 하루다. 꿈 꿈은 반대라던가. 그저 꿈은 꿈에 불과하다고 하던가. 간밤엔 차~암 달콤했다.ㅋㅋㅋ 음음... 누구였더라...그 사람은.... 나는 꿈 속에서 아리따운 숙녀였고, 그 누구와 새콤달콤 사랑을 한 것이다. 아아!! 꿈을 절대로 깨고 싶지 않았는데... 열어둔 창문으로 가을의 새벽바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만 깨고 말았다. 옆에서 남편이 쿨쿨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ㅎㅎ 친구가 주고 간 만년필 군대 가면서 만년필을 선물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자기에게 편지를 쓰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면서...그런데 한 번도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안 썼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후회가 되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네요. 그 친구 소식이 참으로 안타깝게 들리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을 껴안지 못하고, 왜 나에게 다가오던 사람에게 거만하고 냉정하게 대했는지, 이제야 그 사람의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만나면 정말 철없던 그때의 일을 사심없이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이제는 그 사람이 냉정하게 거절할 것 같아요. 친정 어머니 막내딸 유학을 보내시고, 반찬값을 버시겠다며 엄마는 양말을 뒤집는 소일을 하셨습니다.저는 이런일들은 정말 노동력 착취라고 하시지 말라고 극구 말렸습니다.아랑곳 하지 않으시며 양말을 뒤집어서 흠집을 찾아 반찬값을 버셨던 우리 어머니!! 평생 병을 달고 사셨습니다. 그나마 화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기셔서 몇년이나마 더 사셨을까.뇌 수술을 두번 하셨고, 혈압도 코로 터져서 죽을 고비를 넘기셨으며,두 다리를 5년을 사이에두고 인공관절을 넣으셨으며, 결국 심장에 이상이 생겨 검사하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시고 가셨죠. 병원에 이틀을 못 계셨으니... 돌아 가신지 몇개월이지나니 차라리 고통없이 잘 가셨다 싶네요. 문득 엄마를 만져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왜 이리도 사무치게 그리운지..... 친정 아버님 아버지는 이북에서 6.25때 피난 나오신 분입니다.황해도 금천이 고향이시지요.학교라고는 소학교 학력이 전부이세요.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셨어요. 남편이 저와 결혼할 때 참 신기했다고 합니다.어떻게 딸들도 다 가르치셨을까.잘 사는 집도 아닌데... 하구요. 아버지는 일찍 깨이신 분이었습니다.미군속으로 오래 근무하셔서인지 그들의 생각을 많이 마음에 담으셨던 것 같아요. 딸들 중 둘은 중매로, 둘은 연애결혼을 했는데요.선보러 갈 때 아버지하고 간다고 했어요,그만큼 아버지는 언변이 좋으셨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고추농사, 도라지농사를 가장 크게 지으시는데 저는 가끔 놀랍니다.농사꾼도 아니셨는데 귀농을 하셔서 남 부럽지 않은 수익을 내는 아버지가요.건강하시기도 하지만, 공부를 하시더라구요.그 연세에도 농사에 대한.. 이전 1 ··· 28 29 30 31 32 33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