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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가족.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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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만의 제사법 내일로 다가 온  친정어머님 첫제사를 결혼한 셋째 딸이 모시기로 했다.어차피 아들이 없고 살아 생전의 상황과 변함이 없으니.큰 딸은 기독교인이며 환자이고, 둘째 딸인 나는 시부모님이생전에 계시니 어렵고, 비교적 자유로운 셋째 딸이 지내기로 한 것이다.제부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 부모도 싫다 하는 세상에장모님까지 모신다고 하니 이 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을까?  어머니를 모신 화천의 법장사에서 제사를 지내자고 했는데. 학교에 근무하는 두 딸이 수업등의 이유로 일찍 시간을 낼 수 없고,더 중요한 것은 절에서 늦은 시간에는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한다.절에 잠깐 모여서 이내 헤어지는 것보다는 따뜻한 진지 한 그릇이라도직접 손으로 해서 올리는 일이 더 옳은 일 같다.아버지께서도 상황을 고려하셔..
돌아 가신 어머니 1주기에 부쳐 *  어머니 1주기에 부쳐 *  나무 아래 묻혔다는 표시로 꽂아 놓은 소나무 가지 하나.지난 4월 아버지께서 심어 놓으신 빨간 철쭉.잘 뻗은 나무는 누군가 베어 갈 것이라며, 선택한 못 생긴 붉은 소나무 한그루.  너무 초라하기만 한 어머니의 흔적 앞에서네 자매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화장을 모신 후, 납골당에 모시자는 딸들의 의견을 무시한 것은 아버지이셨는데, 아들이 없는 아버지께서는 바쁘게만 살아가는딸들을 위해서 산에 유골을 뿌리자고 하셨었지요.아버지댁에 오가면서라도 한 번씩 들르자는 의견을 모아 그렇게했는데, 아무리 딸들이지만 이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늘 가셨던 화천의 법장사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모셨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합니다.   평소 늘..
"어린이 날"에 대한 단상 아이도 성인이 된 지 꽤 오래 되었으니, 우리 집 다섯식구는 이런 날 다 자기 스케줄 대로움직이고, 그저 나처럼 평소 일에 지친 사람은 아무도 상관없이 푹 쉬면 되었다.공통된 행사가 따로 없으니, 각자 생각대로 .....어제는 컴도 한번 열지 않고 입도 몸도 모처럼 푹 쉬었다.  저녁에 마포농수산물 시장에 잠깐 장을 보러 갔는데,  대한민국의 자동차와  대한민국의 사람은다 그 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아예 낮에는 자동차 자체가 시장에 진입을 못하였다고 한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을 했는지,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월드컵공원에.....평화의 공원에.....노을 공원에..... 하늘공원에.....세계가 보고 간 이 곳에는 평일에도 현장학습을 온 학생들과, 때때로 프로축구가 열리는날에는 서둘러서 집에 가..
정말 보기 드문 예쁜 결혼식 연지곤지를 찍은 새색시는 예쁜 인형 같았고,신랑은 캐나다 사람으로 어찌 그렇게 얼굴이 희고 잘 생겼는지..신랑 신부가 어쩌면 그렇게 예쁜지 나는 좀 놀랐다.또한 통역을 대동한 신랑의 부모는 얼마나  인상이 선한지...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사람인 박팽년의 사저터였던 한국의 집에서오늘 결혼을 한 신부는 남편의 오랜 친구분이며, 내 블로그 맨 위에있는 매산님(아마추어 사진작가)의 따님이다.연세가 많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두 내외분은 항상 온화하며, 항상 긍정적으로세상을 바라보시는 분들이다.그리고 오늘 결혼한 신부는 고등학교 때 전교 학생회장을 한 우수한 인재이다.대학 졸업 후에 해외 연수에서 신랑을 만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에 유학을 하고 온 친구는,  가서 공부 시작할 때는 그들과..
중학교 동창회(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의 문화재 단지) 대청댐에서 짐짓 밝고 높은 소리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한 중학교 동창회는,일 년에 한 번은 만나고 재경 친구들의 모임이 있어서 서로 그리 낯설지는 않다.여자 친구들 몇 명을 빼고는 양성산 등산에 나섰다.그리 높진 않았지만 이틀내내 내린 비로 미끄러웠고,서울에 남산보다 조금 높은 산이지만, 관악산 등반에서 늘어난무릎인대의 말썽으로 등산이 내겐 매우 조심스러웠다.다행히 산행 중에 비는 그쳤고, 다리도 괜찮았다.어제밤에 열심히 머리를 만지고 잤는데(혹 첫사랑 남학생이 올까 ㅎㅎ),산 정상에서 먹는 시원한 막걸리 한잔과 족발의 맛을 아는가.체면도 없었다. 그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우리는 모두 시간을 근 35여 년 전으로 돌리고 있었다. 호호!! 깔깔!!  껄껄!!회에 매운탕에 술에 잔뜩 먹고 ..
언니의 권사 임직식 어느 날 조카의 홈피에서 언니의 "권사 임직식"을 보고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네 명의 가족이 활짝 웃으며 찍은 임직식의 기념사진을 보며 저는 가슴으로울었습니다. 너무 좋아서요. 너무도 감사해서요.언니에게  또 희망의 날을 주신......하느님께 정말 감사를 드린 날이었습니다.  언젠가 언니가 그랬습니다.이렇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 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어둠 속에서 만났던 참빛은 참으로 눈이 부셨다고.....  우리 언니는 신장과 췌장의 최대 수혜자이지요.삼성서울병원의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은 제 1호 환자이기도 합니다.피지도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간 어느 숭고한 분이 아무런 댓가도 없이언니에게 새 삶을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그 병원의 주요 관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
딸 아이의 첫 월급 딸아이가 첫 월급을 받아 오던 다음 날,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은행으로 갔습니다.딸아이 이름의 주택청약부금으로 매월 십삼만원,일반 적금으로 삼십칠만원. 그렇게 오십만원의 돈을매월 아이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불입을 하도록 했습니다.돌아  오는 길. 아이에게 저는 물었습니다."이제 시작이지만 부자가 된 것 처럼 기쁘지? 그렇지 않니?""엄마,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뿐이지요.""만 2년이 지나면 일반아파트 청약시 1순위가 되고, 그게아니더라도 저축에 의미를 두면 되는 것이야. 이렇게 하는 일은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거라 엄마는 믿는다."   어찌 보면 세상의 때라고는 묻지 않은 우리 아이는 착하기만 합니다.이제 성인이고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번돈을 마음대로 한다고..
아이 아빠 남편은 광고회사의 AE였다.어느날 퇴근하여 온 그는 "더 이상 회사에 다니다가는 죽을 것 같다"면서근 20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다고 하였다.친정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며 넘어야 했던 파고를 어려서 부터 경험한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그 후로 매달려 보기도 하고, 회유도 해 보고, 협박(?)도 했지만,그렇게 그는 그리 녹록치 않은 사회로 별 준비도 없이 뛰어 들었다.실패도 경험하며, 그는 결국 자기와는 전혀 상관도없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데, 워낙 성실하다 보니,  그럭저럭 어정쩡하게 살아 가고 있다.그래서 이 경제위기로 직장에서 밀려 나거나 명예퇴직을 한다는 말만들어도 나는 참 남의 일 같지 않다.세상은 결코 녹록지 않은 곳이므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만 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