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세상이야기 (581) 썸네일형 리스트형 성산대교 밑에는 그 곳에서는 가끔 섹소폰의 음률이 짙게 깔립니다. 귀에 익숙한 My way, 타이타닉,Alway...등의 음악이 들리면, 사람들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모여 듭니다. 그 곳에 운동 나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인생의 가을에 들어선 사람들. 생활은 풍요로울텐데도 황량하고 쓸쓸하게 보입니다. 세상에서 당당했던 시대는 정녕 가버린 것일까요? 책끝에 붙어 있는 부록처럼 곁가지 인생이 된 걸까요? 어스름한 저녁시간, 성산대교에서 가끔 있는 일입니다. 옛 서대문 형무소 역사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 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과거 악명 높았던 감옥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87년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으로 이전하기까지 사용되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기도 하다. 크기는 부지 19만 8,348m2, 연건축면적 26,446m2, 수감 가능인원 3,200명. 지금의 역사관은 당시 부지 중 일부만을 재보수 및 복원해놓은 것이다. (나무위키) 인생이란 생각 보다 쉽게 영위할 수 있다. 다만 불가능한 것을 받아 들이고, 꼭 필요한 것 없이도 참고 견디며, 참을 수 없는 것도 참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너무 쉬운말 같지만 견딜 수 없는 말이기도..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 생애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어디 내 생애서라도 사색 저녁바람을 가르며 걷고 싶다. 물론 뚜렷한 목적지는 없지. 그 다음일은 걸어 가면서 생각하자. 많은 사람들의 떠들썩한 아우성!! 그 속에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 하겠지? 할 수만 있다면 주위에서 일어 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아예 외면하고 싶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바위취 바위취(Saxifraga stolonifera)는 범의귀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키는 60cm쯤이고, 잎은 뿌리줄기에서 뭉쳐 나는데 신장 모양이며 길이 3~5cm, 폭 3~9cm이고 흰색 무늬가 있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꽃줄기가 높이 20~40cm 정도로 곧게 서며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꽃잎은 다섯 장인데, 윗 세 장에는 짙은 붉은색 점이 있다. 아래에 달린 두 장의 꽃잎은 흰색이고 바소꼴이며 길이 1~2cm 정도로 나란히 아래를 향한다. (위키백과) 사느라고 꿈꾸는 재미를 깜박 잊어버린 나에게...그리고 당신에게오늘은 더 재미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며느리밥풀 꽃 (금낭화) 꽃은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은데다,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듯한 모습.그래서 금낭화를 일명 '며느리 밥풀꽃'이라고도 한답니다.슬픈 전설도 숨어있는 꽃이지요. 생약명으로는 하포모단근(荷包牡丹根), 금낭근(錦囊根)로 불린다. 세뱃돈을 받아 넣던 비단 복주머니 모양과 비슷하고, 금낭화의 꽃 속에 황금빛 꽃가루가 들어 있어 금주머니꽃이라는 뜻인 금낭화라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등처럼 휘어지고, 모란처럼 꽃이 아름다워서 등모란 또는 덩굴모란이라 부르기도 하며, 꽃의 생김새가 옛 여인들이 치마 속에 넣고 다니던 주머니와 비슷하여 며느리주머니, 며늘치라고 부르기도 한다.(위키백과) 베롱나무 배롱나무(영어: Lagerstroemia indica)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소교목이다. 꽃이 한 번에 피고 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 번갈아 피고 져서 오랫동안 펴 있는 것처럼 보여 백일홍나무(百日紅나무, Zinnia elegans) 또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백일홍의 소리가 변해서 배롱으로 되었다고 추정한다. 백일홍이라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원산지는 중국 남부이고, 대한민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등지에 약 3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 줄기를 간지럽히면 간지러운듯 가지가 흔들어진다. 그래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한다. (위키백과) 남아선호사상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도 많았고, 가르치고 키우는 것 자체가그들의 노후 보장이었다.특히 아들인 경우는 더욱 그랬다.못 먹고 못 입어도 오직 아들의 성공이 부모님의 미래였기에 모든 것이 아들에게는 각별했었다. 내가 다녔던 부강초등학교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한 반 전체가 다 여자였다.오빠와 남동생의 성공 뒤에는 대한의 수많은 누이들의희생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 모자라는 자식이 효도한다고들 한다.잘난 자식들은 자기가 잘나서 성공을 한 것이고 이기적이기만 하다.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이고 보면 그에 맞는 짝도잘난 사람이어야 하므로 부모는 늘 뒷전이다.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우리는 자식도 많이 낳지않았고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시골친구 정숙이.. 이전 1 ··· 69 70 71 72 7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