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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가족.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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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줄 세가지 결혼선물 (매산님 사진) * '딸에게 결혼선물로 주면 어떨까' 하는 세가지 물건* 첫번째는요. 태어난 날로 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1년을 꼬박 쓴 육아일기입니다. 아이의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때 쓴 일기는 소중하기만 합니다. 제가 그때 한국의 천재작가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는데, 그녀가 쓴 육아일기에 심취했었습니다. 그녀의 일기와 제 일기와는 지금에 와서 봐도 비교가 되지 않지만 어쨌든 저도 쓰긴 썼습니다. 두번째는요. 아이의 교육비를 적어 온 금전출납부입니다. 저는 사교육비를 음악과 미술교육에만 지출했습니다. 원래 만나는 선생님마다 음악을 권했구요. 아이도 무척 좋아했으며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늘 학교 채플반주자이었습니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는 것 같았어요. 중학교 2학년..
딸 아이의 교통사고로 가슴 졸인 하루 딸아이의 안양 지하차도에서의 사고. 가슴 졸이고 놀란 하루!!
추억 (낙엽) 단풍잎 말려 가며,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테두리를 만들어 가며 일기도 쓰고, 시도 적어 가며 문학소녀를 꿈꾼 적이 있었다. 돌아보면 우습기도 하고 내 성장과정이기도 했었다. 전혜린처럼 우수한 두뇌의 여자에게 빠진 적도 있고, 칼릴 지브란이 몹시 좋았던 적이 있었으며, 까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에 빠져서 지낸 적도 있었다. 한때 심리학과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아 카운슬러 같은 직업이 나에게 참 맞을 거란 생각을 한적도 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해 준 아름다운 사람들이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삶은 늘 어제보다 오늘 내게 가르쳐 주는 것이 많다. 이룰 수 없던 꿈에 대한 미련에 가슴이 아린 하루다.
꿈은 반대라던가. 그저 꿈은 꿈에 불과하다고 하던가. 간밤엔 차~암 달콤했다.ㅋㅋㅋ 음음... 누구였더라... 그 사람은.... 나는 꿈 속에서 아리따운 숙녀였고, 그 누구와 새콤달콤 사랑을 한 것이다. 아아!! 꿈을 절대로 깨고 싶지 않았는데... 열어둔 창문으로 가을의 새벽바람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만 깨고 말았다. 옆에서 남편이 쿨쿨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ㅎㅎ
친구가 주고간 만년필 군대 가면서 만년필을 선물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편지를 쓰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면서... 그런데 한 번도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안 썼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후회가 되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네요. 그 친구 소식이 참으로 안타깝게 들리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을 껴안지 못하고, 왜 나에게 다가오던 사람에게 거만하고 냉정하게 대했는지, 이제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만나면 정말 철없던 그때의 일을 사심없이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사람이 냉정하게 거절할 것 같아요.
친정 어머니 막내딸 유학을 보내시고, 반찬값을 버시겠다며 엄마는 양말을 뒤집는 소일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은 정말 노동력 착취라고 하시지 말라고 극구 말렸습니다. 아랑곳하지 않으시며 양말을 뒤집어서 흠집을 찾아 반찬값을 버셨던 우리 어머니!! 평생 병을 달고 사셨습니다. 그나마 화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기셔서 몇 년이나마 더 사셨을까. 뇌 수술을 두번 하셨고, 혈압도 코로 터져서 죽을 고비를 넘기셨으며, 두 다리를 5년을 사이에 두고 인공관절을 넣으셨으며, 결국 심장에 이상이 생겨 검사하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시고 가셨죠. 병원에 이틀을 못 계셨으니... 돌아 가신지 몇 개월이 지나니 차라리 고통 없이 잘 가셨다 싶네요. 문득 엄마를 만져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리도 사무치게 ..
친정 아버님 아버지는 이북에서 6.25 때 피난 나오신 분입니다. 황해도 금천이 고향이시지요. 학교라고는 소학교 학력이 전부이세요.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셨어요. 남편이 저와 결혼할 때 참 신기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딸들도 다 가르치셨을까. 잘 사는 집도 아닌데... 하고요. 아버지는 일찍 깨이신 분이었습니다. 미군 속으로 오래 근무하셔서인지 그들의 생각을 많이 마음에 담으셨던 것 같아요. 딸들 중 둘은 중매로, 둘은 연애결혼을 했는데요. 선보러 갈 때 아버지하고 간다고 했어요, 그만큼 아버지는 언변이 좋으셨습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고추농사, 도라지 농사를 가장 크게 지으시는데 저는 가끔 놀랍니다. 농사꾼도 아니셨는데 귀농을 하셔서 남 부럽지 않은 수익을 내는 아버지 가요. 건강하시기도 하지만, 공부를 하시더라고요. ..
넋두리 누굴 붙잡고 넋두리라도 하고 싶은 날. 공연한 일이지. 추한 일 벌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