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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가족.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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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권사 임직식 어느 날 조카의 홈피에서 언니의 "권사 임직식"을 보고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네 명의 가족이 활짝 웃으며 찍은 임직식의 기념사진을 보며 저는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너무 좋아서요. 너무도 감사해서요. 언니에게 또 희망의 날을 주신...... 하느님께 정말 감사를 드린 날이었습니다. 언젠가 언니가 그랬습니다. 이렇게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맞이 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어둠 속에서 만났던 참빛은 참으로 눈이 부셨다고..... 우리 언니는 신장과 췌장의 최대 수혜자이지요. 삼성서울병원의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받은 제1호 환자이기도 합니다. 피지도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간 어느 숭고한 분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언니에게 새 삶을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병원의 주요 관찰자라고 해도 ..
육아일기 털진달래 (한라산) * 매일 아기를 씻기며 (1987년 4월 30일 목요일 ) 기적과 같이 주어진 너를 나는 기적처럼 받아 안았다. 참새를 키우듯 가지에서 가지로 모이를 모아다 너에게 먹였다. 나날이 아름다워 가는 너의 눈과 너의 분홍빛 몸을 매일 씻기면서 나는 매일 기적을 생각했다. 기적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우리 딸 육아일기 중에서...)
졸업을 축하 해 주세요.^^* 4년 동안 시간표가 같았던 친구입니다. 우리 딸이 동덕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는 날이에요. 졸업연주회를 보러 온 선배 언니는 안타깝다는 듯이 "이제 너도 힘든 시기가 곧 올 거야" 했습니다. 선배언니의 생각 속에 축하만 해 주기에는 후배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어두워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졸업을 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그간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까요? 허긴 저도 저 때에 부모님의 노고를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으니, 더 바랄 게 있겠습니까? 늘 일하는 엄마 뒤로 할머니께서 업어서 사랑으로 키워 주셨습니다. 오늘의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는 무조건 사랑 속에서 컸습니다. 이제 힘겨운 사회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잘 적응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조금은 흐뭇합니다. 아마..
딸 아이의 첫 월급 딸아이가 첫 월급을 받아 오던 다음 날, 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은행으로 갔습니다. 딸아이 이름의 주택청약부금으로 매월 십삼만 원, 일반 적금으로 삼십칠만 원. 그렇게 오십만 원의 돈을 매월 아이의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불입을 하도록 했습니다. 돌아 오는 길. 아이에게 저는 물었습니다. "이제 시작이지만 부자가 된 것처럼 기쁘지? 그렇지 않니?" "엄마,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 뿐이지요." "만 2년이 지나면 일반아파트 청약 시 1순위가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저축에 의미를 두면 되는 것이야. 이렇게 하는 일은 네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거라 엄마는 믿는다." 어찌 보면 세상의 때라고는 묻지 않은 우리 아이는 착하기만 합니다. 이제 성인이고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
시아버님 * 시아버님 * 어느 방송에 홀로 되신 시아버님을 모시는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때때로 속옷을 빨아 드려야 하는데... 세탁기에 가루비누를 넣고 갈아입으실 때마다 거기다 넣으시라고 했다는.. 시어머니는 그래도 괜찮은데 시아버지는 정말 어려운 분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나는 결혼을 하면서 같이 살아서 그런지 시댁이라는 개념도 없고, 시부모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특히 결혼해서 집에서 주부로 있었던 적이 일년 밖에 없었으니, 부모님께 하숙비 내고 얹혀 살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뿐이다. 해주시는 밥을 먹고 그렇게....... 딸이 없는 시댁의 나는 딸이 되었고, 당연히 부모님도 내 부모님이 되었다. 속옷과 양말이 굴러 다녀도 네 것 내 것이 없고, 아무나 빨면 된다. 물론 나도 결혼초에는 많이 힘들었..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두믈머리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 처가에 인사를 할 때만 해도 신랑은 씩씩했다. 그러나 이어서 홀로 자리에 앉아 계신 어머니께 인사하는 순서에 가서는 얼굴을 돌리고 우는 것이었다. 신랑집 하객으로 온 사람들도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나도 울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신랑 아버지인 우리 외삼촌은 신랑이 4살, 동생이 채 백일을 넘기기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다행히 외숙모는 은행원이어서 생활은 그리 궁핍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단아한 외모에 젊은 외숙모에게 세상의 유혹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도 그녀는 단단하고 의연했다. 그녀는 두 형제를 좋은 대학에 보냈다. 정말 좋은 직장에도 보냈다. 그리고 큰아들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다. 신랑은 처음부터 어머니와 같이 살 신부를 고른다고..
대학 마지막 정기연주회 * 마지막 정기연주회 * 어제 우리 아이는 대학생으로는 마지막 정기연주회무대에 섰습니다. 오케스트라연주회가 항상 그렇듯이 여러 악기에서 울려 나는 다양한 색깔과 풍부한 음향이 듣는이로 하여금 행복과 기쁨을 만끽하게 하고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브라암스의 대학축전 서곡" "세빌리아의 이발사"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 우리 귀에 익숙한 가곡 "산유화"등 주옥 같은 곡들을 연주하는 동안 객석은 때로는 비통하고,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화려함으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는 27일 졸업연주회를 끝으로 대학생활을 거의 마치게 됩니다. 며칠전 우연찮게 가르치던 실내악교수님이 악장으로 있는 한 퓨전오케스트라(국악과 양악의 접목)에서 추천과 오디션을 거쳐 일을 하게 되었고, 내년에 인도네시아...
한 해의 반양식 김장을 하다. *한 해의 반 양식!! 김장을 하다* 문을 열고 나서면 코끝에 와닿는 오염 없는 알싸한 공기. 늦가을의 정취라고는 느낄 사이도 없이 바쁘게 채워야만 하는 서울의 생활을 화천에 내려 놓았다. 얼마나 조용하고 푸근하고 아름다운지..... 배추밭에 떨어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평생을 여자들 하고만(?) 사신 자상하신 아버지께서는 다듬고 절이는 내내 옆에서 도와주셨다. "무얼 도와줄까"하시면서... 서울 토박이신 시어머님의 김장김치는 늘 깔끔하고 인상적이고, 무엇보다도 맛있다. 새우젓, 멸치액젓, 황석어젓, 생새우. 굴 등의 양념을 넣은 절대 맵지 않고 짜지 않은 서울 사람들의 김치.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이 완성되었다. 청정지역의 김장거리로 서울사람들의 입맛에 맞춘 김장을 끝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김장을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