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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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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청소년판) 제 5권 동네 야소교 예배당 등장.필녀와 송리댁은 거침없이 서양 귀신이라고 몰아붙이며 송수익이 강조한 대종교를 떠 올린다.송수익과 지삼출을 찾아 온 젊은이와 늙은이 두 사람의 밀정을 죽이고 구덩이에 파묻는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나고 의병 씨도 말렸으니 조선땅에 대일본 제국의 태평세월이 시작되었는다는하시모토는 쓰지무라와 잔을 나눈다.죽산면의 새 주재 소장이 참석한 자리..국권 회복하겠다는 임병찬을 거문고로 유배했다고 기세 등등한 쓰지무라.두 번째 첩을 얻은 죽산면장 백종두는 위 평천하 구에 둑을 쌓고 논을 만들 꿈에 부푸는데....총독부 재산인 국유지를 착복했다는 이유로 면직당한다. 당산나무 아래서 죽은 용철을 동네 사람들이 시신을 수습하며 장례를 치러 준다.그리고 남상명은 동네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서 박병진의 유언..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청소년판) 제 4권 환생이야 환생이야녹두장군 환생이야여덟 장 수 호랑이 장수천군만마 몰아오네좌로 치고 우로 치고왜놈들 씨 말리면맺힌 한 풀어지고설킨 한 삭아 들지(12쪽에서)    남상면은 왜놈들에 맞서 풍악을 울려야 한다고 아버지가 징역형 5년을 살고 있어서 하지 않는다는박건식을 설득. 풍악놀이를 하지만 북과 장구를 왜놈들에게 빼앗기고 찢긴다.백종두와 이동만은 토지조사위원회 지주대표를 구성하여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고,그런 가운데 협조하지 않은 차갑수가 총살당한다.그의 부인은 실성해서 저수지에 빠져 죽고어린 남매는 걸인 행위를 하다가 주막을 한다는 주모를 만나는데....그의 아들 득 보는 주막에 있게 되지만 차갑수와 가끔 소리를 잘하던 딸 옥녀는놀이패에 넘겨진다.    송수익은 부하들이 만주로 오기 전에 최적의 투쟁 지를 ..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청소년판) 제 3권 (3권의 줄거리> 조선농민을 괴롭히는 요시다의 앞잡이 이동만은 부는 축적하지만 소작인들에 의해서피습당하고 그로 인해서 다리가 부러진다.송수익과 헤어진 공허 스님. 의병들과 지삼출 손판석 등은 후일을 기억하고,철도 호남선은 개통된다.   사탕공장을 이미 세웠고 정미소를 차릴 계획을 하고 있는 장덕 풍.그의 아들 장 칠 문은 순사가 되어 군산으로 간다.도박에 빠진 양반 만석꾼 정재규가 돈을 빌려 가면 갈수록 장덕 풍의 부는 쌓여 가고정재규 3형제가 재산싸움을 하는 동안 그의 친일활동은 계속된다.    주재소에서 풀려난 신세호는 더 이상 농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농사를 손수 짓기로 하며 후일에 서당을 다시 세우려고 마음먹는다.송수익 모친이 사망하자 빈소를 찾은 공허 스님은 순사에게 붙잡히지만 호신술로 제압하..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청소년판) 제 2권 나는 작년에 조정래 씨가 집필한 "태백산맥"과 "한강"을 읽었다.태백산맥은 공산당과 시대적인 상황을....그리고 한강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가 이북으로 월북한 당시 연좌제에 묶인 두 형제의이야기였으며,지금 읽고 있는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기고 무참하게 생활을 한 민초들의 이야기.....20년을 집필에 몰두한 조정래작가에 대해 무한한 인간승리와 존경심에 머리를 숙인다.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어제 1권 오늘 1권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나라를 되찾는 건 하늘의 뜻일세.자나 깨나 나라 걱정 맘 변치들 마세.아리 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이 났네 으으아리랑 응 어어 아리랑이 났네 (23쪽에서)    아리 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이 났네 으으아리랑 응 어어 아리랑이 났네작별도 서럽고..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청소년판) 제 1권 불광 근린공원은 정상이 있는 야산입니다.이 야산 아래 위치한 은평구립도서관은 평지로 가도 되지만,운동이 필요한 저는 야산이나마 둘레길로 정상을 향해 올랐어요.질퍽질퍽한 산의 초입을 지나 정상에 갔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도 있지만,조금 더 운동을 하려고 돌아서 가는데....아뿔싸!온통 반질반질한 눈길이었습니다."꽈당... 꽈당..." 2번이나 크게 넘어졌고 1번은 가볍게 넘어졌어요.그야말로 불가항력이었으며 다행인 것은 다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늘은 이상한 날.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읽으려고 빌려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청소년판이었습니다.5권이나 빌려 왔는데 어쩌겠어요.1권을 손에 잡았는데 금방 다 읽었습니다.청소년판이라 그런지 가볍긴 하네요.아리랑 원작은 제가 읽지 않았지만 "태백산맥"이나 "한강"..
세종대왕의 발명품들 여주 세종대왕릉 입구에 전시 되어 있는 세종대왕의 발명품들입니다.전부 모형이예요.^^ 간의   소간의   천평일구   현주일구   정남일구   혼천의   관천대   해시계(앙부일구)   천상열차분야지도   일구대   자격루   수표   측우기
여주 신륵사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그리고..
여주 신륵사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