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312)
"안중근의사 서거 107주기" (안중근 기념관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 서거 107 추모주기 참배홀.  1910년 3월 26일일제의 사형집행으로 32세 나이에 순국하다.  격동의 시대.안중근의사의 출생과 성장과정.  항일독립운동의 명가로 15명이 독립운동의 공로로 서훈을 받았으며안의사께는 최고훈장인 '건국훈장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중근의사는 1897년 천주교에 입교한 후 수년간 독실한 신앙인으로서천주교 전파활동을 펼쳤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안중근의사와 을사늑약.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는등 조국과 민족을 되살리기 위해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친다.  안의사는 항일운동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연해주, 중국의 산둥 상하이등지를 시찰한다.  1909년 초 11명의 동지들과 일심단결하여국권을 회복하고자 단지동맹을..
목가구의 미학 (線 鮮 善) "목가구의 미학"국립민속박물관과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공동기획전.  이번 전시회에는 사랑방가구, 안방가구,부엌가구를 비롯해서 전통목가구와현대작가의 작품등 80여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형태와 색채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주변환경과 잘 어우러져 살아온선조들의 삶과 세월이 담겨 있는....일상의 쓰임에 미감을 더한 전통가구들이었습니다.    제 1부"사랑방 가구, 올곧은 정신과 격조를 담다."   제 2부"대청가구와 부엌가구 쓰임에 미감을 더하다."    흑감나무(감)로 만든 삼층책장삼층책장 조선후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제 3부"안방가구 화려함과 소박함을 갖추다." 머릿장,경대,혼수함.  반닫이    경상...조선후기지붕의 처마처럼 양끝부분이 올라간 것이 인상적이지요?  "반짇고리와 포백척"..
"강종순 한복전"-은평역사한옥박물관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은평 한옥마을의 풍경입니다.서울의 신흥부촌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요.여기는 진관동인데요.북한산 구름정원길(둘레길)근처입니다.    오늘은 비예보가 있어서 아침부터 하늘이 흐렸습니다.    대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신비함...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연을 찾는 것이겠지요?    근처에 있는 은평 한옥박물관에서는 "강종순 한복 전"이 열리고 있었어요.가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제가 "강종순 한복 전"을 보고 왔습니다.    입구에서 안내를 하시는 분께 여쭈어 보았습니다."사진을 담을 수 있겠냐?"라고....1,000원의 관람료를 내고 들어 갔는데요.    입구에서 한 장의 사진을 담았습니다.자원봉사자님께서 펄쩍 뛰시는 거예요."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나요?"저는 평범..
한국영화박물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영화박물관입니다.  박물관 입구에 커다란 영사기가 전시 되어 있어요.  박물관 로비에는 영화 "군도"에서주인공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소품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강동원의 손길이 닿았던 장검도...  영화소품들.  임권택 감독이 베를린에서 받아서 기증한 황금곰상.  영화소품  1980년 어우동 대본.   시나리오와 영화장면을 스케치한 노트.  프랑스제품 35mm 카메라.  영화에 사용된 소품들.   1973년 당시의 카메라.  필름캔  영문타자기.고인이 된 감독의 따님이 기증했다고 써 있었는데요.성함을 잊었습니다.^^   하길종감독의 유품 하길종감독.1975년 영화의 소재를 바꿔 대학생들의 억압된 삶을 풀어낸 「바보들의 행진」을 연출하여 상업적인 성공과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
삼각산 삼천사 이 삼복더위에 무슨 절이냐구요?사실 작정을 하고 간 것은 아니구요.시원한 곳에서 차 한잔 마시다가 계곡에 가서 찬 물에 발이나 담그자고 했는데,의외로 제가 사는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절이 있는지 몰랐습니다.다만 아쉬웠던 점은 절경내가 요사이 재건축해서 오래된 옛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사진이 선명합니다.  절 뒤로 북한산이 보입니다.  삼각산 삼천사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북한산(삼각산)에 있는 절로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흥국사(興國寺) 등과 함께 창건한 절이라 하나,그 뒤 중창 및 중수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있다.다만, 고려 현종 때 이 절 등의 승려들이 쌀로써 술을 빚어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하며, 6·25 때 불탄 뒤 19..
삼각산 삼천사(3) 삼천사 계곡에 발을 담그다.맑은 물에 취하고 시원해서 취한...정말 뜻하지 않은 행복한 나들이였다.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 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나무위키)
삼각산 삼천사(2) 이렇게 가까운 곳에 훌륭한 절이 있었다니....그 날 데레사님과 나는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삼천사를 내려 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이후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고려사》에는 1027년(고려 현종 18) 6월에 이 절과 장의사(莊義寺)·청연사(淸淵寺)의 승려들이 쌀 360여 석으로 술을 빚은 것이 발각되어 벌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481년(조선 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한때는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따오지 않았나 추측된다. 1592년(조선..
삼각산 삼천사 (1) 데레사님과 우연히 가게 된 삼천사....이렇게 푸른하늘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가.버리기 아까운 사진들을 모아 보았다.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 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