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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재를 넘어서 의림지로...

작년 7월 해남에 다녀 온 후로 서울을 벗어 나지 못했는데요.

8개월만에 이른 새벽 서울을 떠나 영월에 다녀 왔습니다.

영월에는 10경이 있었어요.

하루를 다 썼는데도 5경밖에 못 보았고, 다른 곳은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딸 아이와의 여행은 너무 자유로워서 좋아요.

내리고 싶으면 내리고 먹고 싶으면 먹고 쉬고 싶으면 쉴 수 있어서요.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박달재였고 이 고개를 넘어서 의림지로 갔지요.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고개를 박달재라 합니다.

그 옛날 박달도령과 금봉낭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로

  고개입구에 일주문을 건립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그런대로 추억을 남길수 있는 곳이란 생각을 하였어요.

 

 

충북 제천시 봉양읍()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 경계에 있는 고개.(나무위키)

 

 

 

 

 

 

천등산() 박달재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에서 이등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발 453m, 길이 500m.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룬다.

이곳은 1217년(고려 고종 4) 7월 거란군이 10만 대군으로 침공해 왔을 때 김취려() 장군이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로 유명하다. 또한 인근의 지등산·인등산과 함께 천()·지()·인()을 모두 갖춘 신령스런 곳으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성소로 알려져 있다.

산에는 잣나무 ·전나무 ·향나무 ·육송 등의 상록수가 울창하며, 도로가 구비돌아 9곡()의 유서 깊은 박달재로 유명하다. 박달재 아랫마을 금봉 처녀와 과거를 보러 가던 영남 박달 도령의 애달픈 사연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달재 [朴達─]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만수면적이 151,470m2이며 최대 저수량이 661만m3에 달하는 인공저수지.

이 곳은 제천에 있는 의림지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의 하나라 하며 그 규모가 대단해 보였구요.

인공저수지라고 해서 또 놀랐고, 경치가 너무 수려해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의림지는 그간 수많은 블로거님들께서 올려 주셨던 곳이었는데

실제로 제가 가보니 감동은 2배로 컸답니다.^^

 

 

 

 

 

 

 

 

 

 

 

 

의림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리시설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이 좀더 견고하게 새로 쌓은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 세조  정인지()가 체찰사(使)로 이곳에 왔다가 3도의 병력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행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규모는 만수면적 13만 ㎡, 최대 수심 13.5m이다.(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