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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전남 강진 다산초당 (2024.10. 1)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산 103-2번지

*061-430-3911

*입장료 주차료 무료

 

2018년 여름 전라남도 5개 도시 여행을 했었는데,

다산초당에 방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었지요.

다산에 대해서 모르는 분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 일가의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순교, 천주교 박해에서 비롯된 정약용의 역사적인 유배생활을 떠 올려 봅니다.

     

 

<다산 4경...서암, 다산초당, 동암, 천일각>

초당에 오르는 길에는 수백년이 된 소나무가 뒤엉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데,

시인 정호승은 이길을 '뿌리의 길'이라고 노래하였답니다.

 

        

 

 

<천일각>

강진 백련사에 내려서 먼저 사찰을 보았어요.

사찰 뒤로 혜장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우정을 이어준 통로였다는

백련사와 다산초당간 800m의 산책길을 걸어서 다산 초당(천일각)에 도착했습니다.

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었던 이 누각(천일각)은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운 누각이라고 해요.

 

 

<동암>

송풍루(松風樓)라고 불리는 동암은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이했던 곳.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의 책을 이곳에서 저술했다고 했다고 하네요~!

이 건물은 1976년 서암과 함께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있는 수로(?)를 통하여 만든 정방형의 연못~

 

 

<다산초당>

 

 

정약용은 강진 유배 처음부터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은 아니에요.

1801년 강진 동문밖 주막집 방 한 칸(사의재)에 살았고,

1805년 강진 사람들 모두 그를 죄인 취급할 때 혜장선사의 도움으로

보은산방(高聲寺 칠성각)으로 거처를 옮겨 9개월을 살았답니다.

그 후 1808년 외가인 해남 윤 씨들의 도움으로 18년의 유배생활을 마친 이 다산초당은

원래 초가집이었으나 해남 윤씨 후손들(다산유적보존회)이 기와집으로 새로 지었다고 해요.

 

 

                                                      ( '이오텍스' 정약용의 가계도)

 

우선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신유박해 때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었다고 해서 유배되었고요.

정약용의 큰형 정약현의 사위(황사영)는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신유박해 때 처형된 순교자이며,

정약용의 자형(누님의 남편) 이승훈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천주교 순교자입니다.

천주교의 전파를 막는다는 이유로 벌어진 당시의 신유박해란 역사적인 사건은

이렇게 정약용의 가계와 연관이 깊습니다.

 

저는 제주 추자도의 '눈물의 십자가'를 통해서, 황사영의 처 정난주와 그의 아들 황경한....

그리고 황경한의 후손들이 아직도 추자도에 살고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추자도 황경한 묘역(2020. 1.22)

추자도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진 섬이고, 하추자도에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의 묘소가 있다.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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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성지순례 도장을 받아가라고 쓰여 있었던 걸 제가 보지 못했네요.ㅜ

 

 

이곳 다산초당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은 정약용은 저술활동에 몰두해서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집필했습니다.

개혁안을 정리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을 포괄하는 거대한 업적을 이곳에서 남겼다고 하지요.

다산초당은 유배객의 쓸쓸한 거처가 아니었고 방대한 집필활동과 10년 동안 다산학단으로 일컫는 18명의

제자를 길러내기도 한 선비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서암>

복원한 제자들의 유숙처

 

 

정약용 사적비

 

 

 

 

다산의 18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윤중진의 묘소.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경기도 남양주 마재마을(현 남양주시 조안면)에서 태어났고 생도 그곳에서 마감했어요.

현재 남양주에 있는 다산유적지에는 기념관과 생가, 정약용의 묘가 있으며, 실학박물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