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생활**/가족. 일상

산행에 나섰다가 119 구급차를 부르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산 7 (위봉산, 되실봉)

 

집을 나설 때에는 위봉산은 산이 높고 등산로가 없으니 오늘은 위봉산성과 위봉사(사찰),

위봉폭포와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한옥마을에만 다녀오자고 했었습니다.

 

위봉산성을 둘러본 저희는 이 안내도를 보는 순간 무엇에 홀린 듯 위봉산성

서문(위의 사진)에서 시작해되실봉(높이 608m)까지 다녀 오자는 욕심을 냈습니다.

되실봉까지는 1.9km(왕복 3.8km)~

 

위봉산(2.91km)으로 행선지를 변경한 것이 1차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위봉산 이정표에 날카로운 그 무엇으로 X 표 한 것 보이시나요?  

집에 와서 되실봉에 대한 글을 찾아보니,

누군가 이 길로 가면 길이 없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지 않았던 분이 있더라고요.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전혀 모른 저희는,

조릿대가 간간이 보이는 길을 포함하여 한동안 편안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위봉산성 안에 있는 위봉사(비구니 사찰) 후원입니다.

위급한 일 발생 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의 어진을 옮겨 오기 위해 위봉산성에 행궁을 지었는데,

행궁이 낡은 관계로 농학혁명 당시 실제로 이 위봉사로 태조 어진을 옮겨온 적이 있대요.

많은 분들이 전주 한옥마을과,

전동성당 근처에 있는 경기전에 봉안되어 있는 태조 어진을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위봉사 후원에 친 펜스 가장자리로 길은 계속 이어졌어요.

 

이 지점부터 길이 점점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하늘이 보이고 갈 수 있는 길처럼 보이지 않으시나요?

 

올라가다가 마스크(사람의 흔적)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이 지점에서 과감하게 포기하고 내려왔어야 했습니다.

제주 오름에 다니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이 있고,

늘 좌우명처럼  '길이 아니면 가지 말자'라고 했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사람키만큼 자란 조릿대를 헤치면서 산중에서 얼마나 헤맸는지요.

발아래 밟히는 험한 돌은 왜 그리 많던지요.

 

저도 크게 한 번 넘어졌지만 남편도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더라고요.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사진 위로 보이는 잡힐 듯한 하늘이었으나,

산중의 길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 무슨 사진???

이제부터는 찍은 사진이 없고, 이곳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멀리 어렴풋이 청색 물체가 보였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청색 비닐이 있던 이곳은 위봉산과 되실봉의 중간지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1.57km 떨어진 위봉산 장대봉은 당연히 포기했고 되실봉으로 향했어요.

 

나무계단에도 인적의 흔적은 없었고, 경사도 심했으나,

헤매던 시간 생각을 하면 그래도 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습니다.

 

 

700m 떨어진 되실봉에 갔다가

이곳으로 돌아와 서문(1,59km)으로 내려왔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을....

그러나 반대방향(위봉산성 둘레길)으로 향한 것이 2차 고난의 시간이 되었던 겁니다. ㅠㅠ

 

위봉산성의 둘레가 16km라고 하더니 되실봉 정상까지 돌로 쌓은 산성은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되실봉 정상 (608m)입니다.

널브러져 땅에 떨어져 있던 안내도는 보수가 시급해 보였어요.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길~

 

1km 가까운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자 한 시름 놓았어요.

이제부터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넓은 임도가 펼쳐졌거든요.

산이 깊어서인지 이곳에서도 인터넷은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길은 굽이굽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시간을 보니 산행을 시작한 지 이미 6시간을 훌쩍 넘겼습니다.

 

산 아래에서 여자 몇 명의 소리가 들렸고, 반가운 마음에 아무 소리나 막 질렀는데,

이곳에서 4km 떨어진 오성제 저수지에 놀러 왔다가 1시간쯤 걸으려고 올라왔다며 인사를 하네요.

세상에나~이렇게 반가울 수가요.

위봉산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부터 처음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준 물 한 병(500ml)과 쑥떡 2개와 붕어빵 2개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요.

도시락과 과일. 커피. 물을 준비하고 다니거늘~ 일이 이렇게 되려고 했나요? 

물 한병 챙기지 않고 산에 오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습니다.

 

올려다본 되실봉 정상~ 보기에도 멋진 산~ 

 

교통수단이라고는 걸어서 가는 방법뿐인데....

위봉산성까지 자동차로 40분이 걸린다는 그녀들의 귀띔에 아연실색했고,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 1km도 가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지쳐 있었어요.

더 난감한 것은 산중의 저녁은 더 일찍 찾아오잖아요.

머지 않아 해가 넘어갈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산행시작 7시간이 흐른 후 주저앉은 이 자리 국가지점번호. 

"우리 둘 다 평생에 걸쳐 성실하게 국가에 세금을 내고 살아왔으니 119에 구조요청을 해 봅시다....." 

자동차 번호를 대라... 다친 곳은 없냐.... 핸드폰 기종이 무엇이냐... 핸드폰 배터리는 얼마나 남았냐? ....

 

계속 확인하던 119 구조대원들은 담요를 가지고 나타났어요.

전주에서 놀러 왔다는 세분 여성과 완주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던 지역민.

전라북도 완주 소방대 구급대원 세 분께도 이 지면을 통하여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산행계획이 전혀 없었던 무리한 산행.

인터넷 부재로 인한 방향감각 상실.

기력을 보충해 줄 먹을거리를 가져가지 않았던 것 등 준비성 부족으로 여러 분들께 큰 민폐를 끼쳤어요.

 

저는 젊은 시절 산마니아라고 할 만큼 전국 유명한 산에 많이 다녔었고요.

남편도 결혼 전 '날다람쥐'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산을 잘 탔다고 해요.

그러나 오늘 구급대원들의 눈에 비친 저희는 그저 상황 판단이 빠르지 않은 평범한 노인들이었고요.

그들의 배려에서 느껴지는 세월에 대한 야속함을 강하게 부정하고 싶지만 꼭 부정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