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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논산 성삼문 묘소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 60-2

서울의 노량진 사육신 묘 이외에 논산에도 성삼문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아실까요? 저도 이곳에 성삼문 묘소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논산의 3대 사찰인 쌍계사에 가는 도중에 들렀습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삼문의 묘비 '충문공매죽헌성선생신도비(忠文公梅竹軒成先生神道碑)'. 그의 곧은 절개와 지조를 찬양하고 그의 능력이 다하지 못함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창녕성씨 문중의 사당으로 성삼문을 배향하며 1991년 창녕성씨 충남 대전지구 종친회에서 건립.

 

'성인각'은 절개와 충절을 기리는 곳이라는 뜻~ 창녕성씨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당....

문이 굳게 닫혀서 내부는 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신체를 소에 매달거나 수레에 달아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거열형으로 성삼문은 가장 처참한 사형을 당했고, 신체를 전국에 버렸다고..... 다리 하나를 지게에 짊어지고 논산 부근을 지나가던 인부가 날이 더워서 버리고 도망갔는데 논산의 선비들이 거두어서 근처 산(이 산)에 묻었다고 합니다. 다리 한 쪽이 묻혀서 이곳 성삼문 묘는 '일지총'이라 불린다네요~

조선 초기의 문신 매죽헌 성삼문(1418~1456)의 묘입니다. 1438년(세종 20)에 식년 문과에 정과로 1447년(세종 29)에는 문과의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집현전의 학사가 되어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덕'을 편찬하는 등 한글 창제에 기여한 분이지요. 

묘의 크기는 둘레 30m, 지름 13m이며, 주변에는 최근에 제작하여 배치한 상석과 문인석, 돌기둥이 있으며, 무덤 입구에는 하마비와 묘비. 무덤 앞에는 묘표가 있습니다. 절개와 지조를 상징으로 하는 성삼문의 묘가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는 문화유산이랍니다. 200년이 지나고 숙종 때 역모 혐의가 풀리고 성삼문이 복권되면서 무덤을 고쳐 짓고 노량진에 사당을 세우며 관직이 회복되었다고.... (성삼문 묘 안내도에서) 

 

'하마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서 내리라는 뜻.

 

 
 

세종과 문종이 세상을 떠나 고 단종이 세조에게 밀려서 왕위를 넘긴 후 사육신이 된 분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였고, 거사에 실패한 후 모두가 죽임을 당한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에 다닐 때 '사육신'에 대해서 많이 배웠고 그에 따라서 성삼문을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가 어찌 죽었고 가열형이라는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로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네요. 38세의 젊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성삼문.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한 것 아닐까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잣나무들이 이리 호위하는 고즈넉한 곳에 잠든 성삼문의 넋을 잠시 기렸어요. 아울러 박팽년 신숙주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절개와 충절을 지켰던 사육신의 넋도 함께 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