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위장전향)
귀신도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갈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이 된 정상규, 그의 집에 쥐도 먹을 것이 없을 정도. 돈이 아까워 대학에 보내지 않은 큰 아들은 술주정뱅이가 되었고 작은 아들도 더 높은 대학에 보낼 생각은 없었다. 후에 작은 아들도 아버지 돈을 집에서 찾아 내고 그돈을 가지고 집을 나간다. 노름으로 재산을 다 탕진한 큰 형 정재규가 찾아와서 논 10마지기만 달라고 하나 어림없는 소리였고, 아내와 아들들은 더 서럽고 그런 정상규가 야속했다. 한편 막내 정도규는 덕유산 속 화전민 움막에 동지들과 함께 모여서 위장전향에 찬성하며 회의를 마친다. 그간 그가 걸어 온길을 생각하며 그는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내심 흡족해 했다. 조선사람들에게 사회주의를 인식시킨 것....15년에 걸쳐 소작쟁의ㅣ 노동쟁의의 동맹휴학을 주도한 것 등등....
(19. 쌀밥)
연해주로 이주하면서 시어머니와 아들 경환이를 잃은 윤선숙. 같이 오다가 없어진 남편에 대한 걱정. 남은 주환과 명혜를 위해 짐승같이 일했다. "고려인들은 앞으로 이 지역을 10년간 벗어나지 못한다." 집단농장에 떨어진 끔찍한 명령. 그래도 옆에는 학부형 김두만이 있어서 위로가 되며 억척스럽게 땅을 일군다. 조선인에게 있어 소련은 도대체 무엇일까?...왜 핍박하는가?...이제 소련은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루도 쉬지 못하는 노동. 그런 가운데 사람들은 죽어 가고 남자들은 틈틈히 신원조사를 받아야 했다. 2월 논농사에 필요한 물이 불어나면서 가슴 설렜고, 3월에는 학교를 지어 아이들을 좋아했고, 그러나 아이들은 말라리아로 죽어 갔다. 논에 소금기를 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밭에서 나는 콩과 고추로 김치와 국을 맛보게 되며 드디어 그들을 쌀을 분배 받게 되었다. 그런데 9월초에 김두만이 체포되어 윤선숙은 망연자실한다.
(20. 제3세대의 얼굴)
1938년 4월 총독부는 조선어시간을 폐지한다. 사범학교학생인 박용화와 유기준. 박용화는 돈이 없는 학생이기에 검사집 다쿠야의 가정교사로 일했고 유기준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책에서 박용화는 우연히 사회주의 사상를 가진 발견하고 배신감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 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다쿠야의 누나 에이코. 그녀들과 단팥죽과 찹쌀떡을 먹게 되는 박용화. 정조관념이 없는 일본인 에이코와 그는 무한한 정사를 즐긴다. 다쿠야의 성적이 9등으로 오르며 검사댁에서 박용화를 초대해서 저녁을 먹게 되는데....부모가 일본에 간 사이에 다쿠야는 집을 뛰쳐 나갔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21. 입 속의 노래)
김건오와 중국인 동지. 나무에 미끼로 걸어 놓은 주먹밥을 떼어 먹으며 지삼출 방대근 양세봉장군 정빈대장등을 생각한다. 배고픔과 추위를 이기지 못한 투항. 1937년 정빈이 부하들을 데리고 투항했고 일본군의 앞잡이가 되어 토벌에 나선 사건이 발생했다. 양정우가 가장 신뢰하던 정빈이 배신하자 부대의 기밀을 전부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방대근은 눈보라치는 밤을 택해서 부대를 출발시켰는데 눈발자욱이 없는 것으로 추적을 따 돌리기 위해서였다. 탐색을 끝낸 보급부. 창고에 접근할 때까지 방대근은 재빠르게 지휘했다. 분대별로 창고를 하나씩 차지해서 부하들이 물건을 챙겨 왔고 횃불을 거기 놓고 나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송가원은 비밀아지트에 있는 총상 동상 폐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며 병이 심한 사람들을 산 아래의 병원으로 내려 보내고 사기차원에서 옥비는 "타향살이" 노래를 한다. 물론 입 속으로만....박수도 손을 엇갈리며 치고....
(22.그들은 그렇게 속았다.)
집을 직접 지어야 했고 보리도 없는 조밥을 먹어야 했으며 남자들은 숯굽기에 동원되어야 했다.벌채 일을 겸하게 된 남자들.일본인들에게는 일거양득인 셈이다. 우람한 산줄기마다 다른 집단부락에서 끌려 온 조선사람들. 집에 남아 있는 식구들이 먹는 것은 조밥과 소금국. 여자들도 땔감을 구하러 10리 20리를 돌아 다녀야 했다. 만주에 오는 것을 반대했던 죽림댁과 남만석. 그리고 매형 김진배는 너무 다른 세상에 온 것을 실감하며 치를 떤다. 그들은 그렇게 속았다.
(23. 변절자는 용서 말라.)
"식민의 거리에 겨울바람은 차고 ....묶인 삶들은 신음하는데....외로운 방황은 오늘도 어느 거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가?" 윤일랑은 역사의 심판을 기다리라며 시를 읖조렸다. 그는 청결하고도 강건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송중원과 윤일랑은 그렇게 의지를 불태웠다. 송중원이 속해 있는 출판사의민동환 사장 주선으로 술집에서 만난 철학교수 황인곤, 소설가 이석진, 사회비평가 문신행, 신문에 자주 토막글을 올렸던 친일냄새를 풍겼던 그들을 보며 송중원은 놀라웠고 뜻밖이었다. 그들을 편집위원으로 모신다는 민동환 사장. 그는 송중원을 그렇게 내쳤다. 친구의 형을 그는 왜 그렇게 내쳤을까?....웃으며 그만 두라고 해도 되었을 텐데.....그렇게 그는 파면당했다.
(24.거룩한 죽음 이름없는 꽃들)
양정우 방대근 조아범 김일성 진한장 최현...1만원 박득범 방진성 ...5천원 위증민 전광... 3천원막대한 현상금이 붙은 전단지가 사방에 뿌려졌고, 제 3방연군의 천상길을 다섯명으로 줄어든 부하들을 데리고 날수수와 눈덩이를 먹였다. 본대를 찾아 나선 방대근은 손가락에 방아쇠가 걸려서 죽은 조카 오삼봉을 보면서 보름이누나를 생각하며 눈으로 덮어 준다. 양정우 장군의 호위분대장은 부대자금 일만원을 훔쳐 도망가는데 왜놈의 첩자가 아니었는지 생각하니 머리가 방대근은 어찔어찔했다. 두 다리가 없어진 필녀...골짜기마다 총을 맞아 쓰러지는 왜놈들을 보며 수국이는 어머니의 한을 푸는 것 같았다. 방대근은 항일연군의 막을 내림을 알리고 부하들에게 후일을 꾀하자고 말한다.
(25.뿌리뽑기)
1940년 2월11일 부터 시작된 창씨개명. 창씨개명을 마친 이광수. 홍씨아들 전동걸은 대(大) 전(田)동걸로 창씨개명. 그 영특함에 홍씨는 공허를 보는 것 같았다. 창씨개명은 조선의 혼을 완전하게 뿌리뽑기 위한 것이었다.
(26. 귀향의 뜻)
세월은 흐르고 남은 건 자식 다섯. 송중원은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송명준은 건넨 사상범...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방관하며 법조계의 물결을 타 넘고 있었다.송명준이 제의한 문서작성을 거절한 송중원....허탁과 송죽의 호의도 다 뒤로 하고 전주로 온 그는 마중을 나온 따뜻한 가족을 만난다. 처가의 장인 신세호와 신기범이 보인 호의. 참으로 가슴이 따뜻해 왔다. 장인의 오줌대감이라는 별명은 장인 나름대로 일제의 소행에 항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눈물겹고 그 속에 장인이 창씨개명을 거부한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장인어른을 더 크고 강하게 송중원은 느끼고 있었다.
(27.진로를 바꿔라.)
1941년 월 31일 부로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하고 조선어의 학습을 폐지시켰다. 따라서 조선어공부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박용화는 에이코와의 결혼을 백지화해야 했다.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1년 가까이 이어 온 관계를 청산하자고 했기 때문이다. 박용화는 무의미한 선쟁질을 그만 두고 사회적인 지위나 권세가 있는 법관으로 진로를 바꾸었고 다만 돈이 문제인데 저축한 돈으로 남은 의무기간동안 돈을 더 모으고 술도 끊으며 열심히 매진하면 될 것 같았다. 당당히 에이코 앞에 법관이 되며 복수하리라 마음 먹는다.
(28. 정인들의 열매)
윤주협과 그의 아내 윤수희. 송가원과 옥비의 딸을 받아 주고 고마움을 표시하려는 저녁자리에 방대근과 민수희 부부를 초대한다. 당연히 방대근의 결혼문제가 화제. 민수희의 후배 간호원을 소개하려는 맞선 자리에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1938년 9월 김원봉은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고 중일 양군의 치열한 공방전에 참전한다. 그러나 김원중 앞에 놓인 현실은 냉엄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지기네 군대의 운영에도 정신이 없는 중국정부에서는 조선독립군의 지원을 냉정하게 외면했다. 김원봉은 중국전부를 상대로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결국 그 문제로 약화되고 말았다. 열흘 만에 퇴원하는 옥비...그는 아들을 낳았으면 박미애와의 관계도 청산되는 것인데....라며 아쉬워했는데 송가원은 아기를 안고 싱글벙글 했다.
(29. 아시히 사진관)
윤철훈과 그의 아내 차은심이 연 아사히사진관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장사라기보다 일본군을 염탐하는 곳이었다. 주위의 장사하는 사람과 연계하고 신경역의 최규승하고도 연계. 염탐에 무게를 더 두는 곳. 고향에서 일본사람을 때리고 도망친 하서방을... 신경역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최규성과 함께 정보조직원으로 선발...일은 모든 운송수단을 기차에 의존하고 있었고 특히 신경역은 만주의 중심이라서 그 동향파악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윤철훈은 정확한 모든 정보가 모아지기를 기도했다. 후에 잡혀서 생체실험용으로 끌려 가는 줄도 모르고...
(30,악법)
하시모토는 오래 전부터 단순한 지주가 아니었다. 고무공장과 솥공장을 경영하는 사업가로 상공회의소도 장악, 전쟁기부금을 많이 거둔 그는 총독으로 부터 표창을 받는다. 도회의원이 되고 사업이권이 굴러 들어 오고 재산도 점점 불어 나는 하시모토. 마침내 그는 곡창지대인 김제읍장이 된다. 읍장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 국민총력연맹 만경지부장 자격으로 온 정도규가 눈에 띄었고 송중원의 장인은 설탕봉지에 여지없이 오줌을 눈다. 오줌영감의 명성에 걸맞은 것인데 그는 그렇게라도 일제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설탕을 포대로 준다고 하더니 조그만 봉지설탕....다시 쇠고랑을 차는 송중원. 그의 죄목은 전향서쓰기 거부. 창씨개명거부. 아이들에게 교묘하게 공부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조선사상범구금령발동. 전국 총호수의87.4%가 창씨개명을 했다고 발표했다. 물론 악법이었다.
(31. 새로운 전쟁)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며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그 다음 날 일본 동경에서는 신생강대국인 미국을 이겼다고 들뜨고 새로운 시작의 전쟁이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세계최강국 일본이라는 둔갑. 이러한 소식은 전동걸의 속을 뒤집어 놓았고 일본 유학생 이미화에게 저렇게 독립에 대한 확신이 있는 유학생은 처음이라는 반응을 얻어 냈다. 일본 송준혁의 아르바이트 가정교사. 최문길의 소개. 최문길은 김이도는 친구였는데 그들은 친일주의자들 조국에 대한 고민이나 민족적 갈등은 아예없고 그냥 순응주의자였다. 평양갑부이며 이름 날리는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김민준. 그는 공부에 뜻이 없었다. 그리고 조카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는 김이도. 오히려 최문길이 김민준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
(32.세가지풍경)
큰형정ㅈ재규는 논두렁에서 쓰러져 죽고, 작은 형 정상규는 자린고비여서 그 집 쥐도 굶어 죽는다고 했을 정도로 자린 고비. 아들 동현이의 취직 부탁을 하러 온 작은 형 정상규에게 정도규는 대학이나 보내라며 싸늘하게 쏘아 본다. 그리고 정상규의 작은 아들은 다락 깊이 숨겨 둔 돈 몇 천원을 찾아 내어 도망을 간다. 고서완을 만나러 가는 길에 유승현이네를 들른 정도규. 그는 작전상 유승현과 미곡상을 동업하는 중이었다. 고서완과의 관계가 무르익을 즈음에 작은 형 정상규가 위태롭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달려 갔는데 아들들은 물론이고 형수에게도 그는 이미 버림을 받고 있었다. 나흘만에 깨어난 정상규.호전도 악화도 장담할 수 없단다. 홍씨네 머슴 필용. 그가 보름이 딸 금예를 덮쳤는데 엄마를 보자 금예는 울음을 터뜨렸다. 홍씨와 보름이의 주선으로 둘은 결혼을 하고, 홍씨가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필용은 세간살이며 살림이 넉넉할 만큼 성실한 사람이었고 장모를 사시고 산다고 했다. 신혼 한 달만에 면사무소에서 필용은 징용을 통보 받았고 김장섭도 징용을 통보 받으며 고민에 빠진다. 벌써부터 만주이민들은 갇혀 살고 온갖 고생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토지조사로 빼앗긴 농토를 찾지 못했으며 도망치려해도 사람들은 무일푼이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내린 필룡의 일행은 400여명의 인원에 기함을 한다. 아내 금예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다.
(34.하와이 지원병)
일본의 진주만 폭격은 하와이에서 콧대 높았던 일본사람들이 점점 적국사람 취급을 받고 수상하면 마구 체포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사관과 영사관이 폐쇄되고 외교관은 추방당했다. 미국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그렇게 불신하는 것은 그들의 스파이 활동때문. 재산 동결령과 출국금지령. 일본인들은 하와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일본은 한국 중국 필리핀과도 적대관계. 토마스를 비롯한 한국광복군에 지원한 자는 모두 6명. 환송식이 끝나자 꽃걸이를 한 그들이 배에 올랐다. 누군가가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아리랑은 언제부터인가 식민지 민족의 망향가고 이별가고 탄식가고 환희가이며 애국가가 되어 있었다.
(35 결의)
박용화는 드디어 일본에 법공부를 하러 동경제국대학에 갔고, 천재들만 모인다는 이 대학. 일본에서 만난 에이코는 아버지 후배라며 좋아하는데 박용화는 에이코에게 나름대로 복수를 한다. 사회주의 혁명실천을 위한 전동걸의 비밀조직.지요코와 전동걸이 들어 가면서 6명이 모였는데 향후투쟁문제.... 회원배가문제......신중론과 확장론 그리고 절충론...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것은 절충론이었다. 중국공산당 부대들의 실태 파악과 탈출시기는 차후에 논의 하기로 했다. 지요코는 활동사진을 보고 나와서 다정하게 걷는 이미화와 전동걸을 보고 놀란다.
(37. 신탁통치설)
신탁통치설 비판 자유한국인 대회. 모두 숙연하고 엄숙한 얼굴로 식장에 300여명이 모였고 그 중 여자들도 많았다. 애국가봉창 순국독립투사에 대한 추모 묵념. 방대근의 머리에 스치는 수국누나. 세계정세는 독일과 중국 영국 미국 블란서를 중심으로 한 연합군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지는 명백한 사실. 최근에 들리는 대한민국의 신탁통치설. 일본이 패망하면 당연히 대한민국의 독립이어야 하는데 연합군의 통치를 받는다니....조선인들의 자존심을 능멸하는 일. 2월 임정의 조소앙외교부장의 비판선언문 발표. 폭압과 살육의 일제치하 33년의 피 어린 투쟁을 끈질기게 전개한 것도 모자라 이게 무슨 망발이냐....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강력하게 외쳤다."대한독립만세. 신탁통치결사반대. 연합군승리만세."..... 강대국은 다 그런 것. 개인이고 국가고 힘없는 쪽만 억울하고 서러웠다.결혼도 하지 않고 총각으로 살아 가는 방대근. 폐렴으로 죽어간 허진....허진의 시. "인생은 무상하다. 그러나 역사는 치열하다. 식민지의 슬픈 역사 위에 나는 불붙어 타고 싶은 하나의 가랑잎"
(36.그까닭)
남만석과 매형 김진배의 겨울 숯구이 노동이 마감되었다. 사람의 힘이 무섭다고 그 많은 숯을 다 구워 내었는데,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까마귀를 방불케 한다. 겨울 숯구이가 끝나고 집에 가는 날. 주먹밥 한 덩이를 먹고 일찍 산을 내려 집에 갔는데 가족과의 해후도 잠깐. 남만석은 밥도 먹지 않고 곧 쓰러져 곤한 잠에 빠졌다. 아이들은 기름기 없는 얼굴에 버짐핀 꺼칠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부락에 군인이나 경찰이 그대로 배치 되어 있었다. 나이 예닐곱 되는 처녀 셋이 봄나물 캐다가 일본 불량배들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처녀들은 무수한 시간이 흘러도 돌아 오지 않았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노는 아이들이 고기잡이에 나서서 잉어와 메기들을 잡았는데 일본 청년 둘이 와서 걷어 차고 그래서 고기들이 땅에 나 뒹굴고 도망가는 아이들을 붙잡아서 때리고 몇몇 아이들을 물 속에 빠트리며 히히덕 거렸으나 더 따라 오진 않았다. 어른들은 한숨만 쉴 뿐....그 까닭을 알고 있었다.
'**문화.예술** > 책...책...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마음의 풍금(여제자)-하근찬장편소설 (0) | 2017.06.20 |
---|---|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12권 (0) | 2017.02.14 |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10권 (0) | 2017.02.09 |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9권 (0) | 2017.02.09 |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8권 (0) | 2017.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