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 같은 자식. 능력에 맞게 살라니까 건방지게." 큰형은 작은형이 자살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대뜸 이렇게 내 쏘았다. 큰형은 작은형이 목숨을 끊은 것조차 "건방지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큰형은 화장을 결정했고 끝내 병원에도 화장터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 12쪽에서(김선진이 큰형 김선오검사와 연이은 고시 낙방생으로 자살한 작은형 김선태를 이야기하면서.-
어제 아침에 잡기 시작한 조정래작가의 한강 8권을 나는 순식간에 읽었다.' 그때 시대 나는 성인이었으니 너무나 역사적인 사건들이 생생했고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최고대학을 나왔는데 연좌제에 걸려 취직도 해외취업도 할 수 없어 좌절하며 간간이 살고 있는 유일민과 유일표 형제. 그들은 곧 우리시대의 사람들이었고 담담하게 그들의 생을 받아들인 민초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유일민은 옛 애인 채옥의 도움으로 작은 사업에 성공(?)을 했고 유일 표도 동지 서혜경과 결혼을 한다. 서독에 간호사로 갔지만 심한 직업병에 허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돌아 온 김광자. 귀국 후 가족들에게 짐이 되어 다시 서독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주선녀. 양공주가 되어, 일본인 접대부가 되어 살아가면서도 국내에서 해외 돈을 벌어들이는 애국자라며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자신을 위로하는 여인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을 유지하는 귀신 같은 카멜레온 같은 국회의원과 그 밑에 빌붙어 검사나 판사가 되기 위해 청춘을 바치는 좋은 머리를 타고난 젊은이들.
인간관계라는 것. 우정이라는 것까지도 거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가 이익을 보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그토록 돈독했던 우정은 거래가 필요없게 되자 일순간에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세상인심이 야박하다는 거야 상식일 수도 없는 사실이지만 친구라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의 그 야벅함을 뒤늦게 겪으며, 거듭 절망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32쪽에서 정동진과 윤 사장과의 관계-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자신을 도와줬던 서동철의 동생집에서 도둑질을 하다 걸려 쫓겨난 천두만 아저씨. 딸아이를 교통사고 뺑소니로 잃은 그 천두만 아저씨는 가나을 지긋지긋하게도 못 벗은 우리 시대의 아저씨다. 인물들의 처한 상황이나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들이 나오는 역사소설이기에 너무 재미있고 책장이 술술 넘어갔지만, 너무 가슴이 아파 속상했고 그것들이 우리가 살아 온 과정이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가슴속에 쌓여 있던 독재의 한스러움. 그때를 지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배신감을 모를 거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간 잔재들이 괴로움으로 밀려들었다. 어쩌면 나도 그 시대를 거쳐온 식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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