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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세상이야기

[스크랩] 노무현 전(前) 대통령을 추모하며.

이제는 평안하신지요?

아무런 근심도 고통도 없는 곳으로 가셨는지요?

 

주말이면 지쳐가는 심신을 달래보고자 가끔씩 찾아가는 채마밭에서

지기의 문자메시지를 통해 님의 유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설마 했지요.

그러나 라디오의 뉴스를 접하고서야 그것이 현실임을 알았습니다.

망연자실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아무것도 없더군요.

 

누가, 무엇이 님에게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는지요?

당신의 정적들이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양심이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었습니까?

만약 죽음으로써 당신 자신의 부끄러움을 지키고,

잘못을 저지른 당신의 주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당신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심으로써 관련된 모든 수사를 종결한다는 결정이 내려졌으니까 말입니다.

그것이 정녕 님이 바라시던 것이었습니까? 아니지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니었다고 하시더라도 저는 결코 당신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 같은 민초들이야 님들처럼 멀고 높이 계신 분들의 삶에 대해서는 알 방도가 없으니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셨는지는 짐작을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40평생을 살아 온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당신의 선택이 잘못된 판단이었다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님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다면 님은 끝까지 싸웠어야 옳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험난한 풍파에도 항상 꿋꿋하고 의연하게 걸어오셨듯이

번에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를 하셨어야 옳았습니다.

또 당신의 주변인들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그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놔두셨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 자신의 행위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본보기로,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 주셨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님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정의롭게 싸워왔듯이 그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의 양심에 한 치의 거리낌이라도 있으셨다면

이승에서 그 업보를 다 씻고 가셨어야지요.

진정으로 백성들에게 사죄를 하고 그들에게 용서받는 길을 택하셨어야 맞는 일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아무것도 해내지 않은 채로 그렇게 가셨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만 하고 가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저의 가슴이 저리고 안타까운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왜 이리도 마음이 허전할까요?

저도 모르게 당신의 그림자가 저의 가슴속에 그렇게 크게 자리 잡고 있었을까요?

 

한때는 당신의 이해할 수 없는 정치행보에 분노를 한 적도 있습니다.

당신의 가벼운 언사에 실망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당신에게 투표를 한 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님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에 반하기도 하였고,

진실하고 당당한 모습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었지요.

 

그러나 정작 님의 모습이 역대의 어느 대통령들보다도 크게 저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님의 인간적인 면모도 아니고,

소탈함도 아니며

진실하고 당당한 모습도 아니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것은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떠난 후에 님이 선택한 삶의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님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자연인으로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셨습니다.

퇴임 후에도 여전히 권력의 뒷방에 눌러앉아서 ‘감 놔라. 배 놔라’하며

노욕으로 얼룩진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여느 대통령들과는 달리

당신은 미련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밀짚모자를 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을을 돌거나

동네 이웃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농담을 즐기는 서민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이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제,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돌아설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시는 멋진 어른이 한분쯤은 계시겠구나 하는 뿌듯함으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연해야할 작은 행복을 당연하다고 느낄 여유도 없이, 님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이제 모든 고통, 모든 비판, 모든 짐에서 자유로워 지셨는지요?

전부를 홀가분하고 내려놓으셨는지요?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당신이 가시는 모습을 TV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찍어내는 당신의 조문객들을 보면서 저도 같이 눈물을 찍어 냈습니다.

당신을 보내는 쓰라림도 있었지만,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리는 또 언제쯤에나 최고 권력자에서 평범한 시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는,

참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국가원로를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습니다.

당신 가시는 모습이

이 나라의 참된 정치인, 품위를 잃지 않는 지도자,

그래서 백성들이 마주 앉아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함께 삶의 애환을 노래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질기회 마저 함께 가져가버리시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또 다시 우리는 다른 어떤 어른이 나타나서 깨끗하고 정직한 선례를 심어주실 날만을 기다려야겠지요.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동안 겪어 오셨던 혹독한 비판과 고뇌 따위의 무거운 짐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시고 훨훨 날아 편안한 세상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리울 것입니다.

 

2009.5.29. 하림

출처 : 빛고을에 사는 이야기
글쓴이 : 하림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