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생활**/천주교

7~80년대 청춘들의 놀이터~그 영원한 서사시~서울 명동에 대한 추억

 

현재 명동성당이 건립된 터는 한국 천주교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김범우 토마스 집이 있던 자리이고, 그가 사망한 후 천주교 조선 대목구측이 사들여서 성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오늘 날의 명동 성당입니다. 왼쪽에 조금 보이는 건물이 지금은 여의도로 옮겨 간 카톨릭 성모병원이었는데요. 저보다 세 살 위인 친 언니가 근무했었지요. 병원에는 야식이란 것이 있어서 그거 얻어 먹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게. 그래서 더 자주 갔었지요~!

지금은 마로니에공원과 강남, 홍대앞으로 옯겨간 젊은이들의 광장. 예전에는  단연 명동이었거든요.1898년 건립된 이래 군부독재 시절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나 기타 민주인사들의 시국선언이 이뤄졌고, 6월 항쟁기간엔 구심점 역할이 된 곳으로도 명동은 유명합니다.

명동 서울 문화의 집성촌이었어요. 1970년대 이후에 명동 지가가 너무 올라가 버리면서 이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음악감상실. 화구점. 화랑. 소극장들이 이제는 홍대거리나 신촌 대학로로 많이 이전했습니다. 명동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 아니라 ‘눈 뜨고도 코 베이는 곳’이에요. 모든 것을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명동에서 사람을 느끼기란 쉽지 않고,뜨내기들이 만든 매장에서 뜨내기들이 물건을 사고 가는 ‘뜨내기의 동네’가 바로 명동입니다.ㅎㅎ

왜 그렇게 우리들이 좋아라 했던가 생각하게 되지요. 겉멋이 들어서 일까요? 암튼 명동은 그렇더라도 한 때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동네였네요. 음식점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명동칼국수와 명화당분식.지금은 없어진 초라한 할머니께서 하시던 오징어볶음집은 줄을 서서 먹었지요. 지금 4호선 명동역 입구라 생각되네요.

‘쎄씨봉’이란 70~80년대를 주름잡았던 포크 가수들이 활동하던 음악 감상실이 이름으로 그날의 출연자인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과 그 외 김민기, 이장희 등의 가수을 배출한 당시 최고의 음악감상실로 모두 집으로 여길 자주 드나들며 음악활동을 펼쳤던 곳이라고 합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목에 머플러를 하고 장말 긴머리를 뒤로 젖히며 음악을 틀던 DJ..ㅎ 그에게 쪽지 꽤나 건네며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곤 했었지요. 

논노, 뼝뼝 기성복 숙녀복을 할부로 사 입던 생각. 티켓 할부로 구두를 산 금강제화는 명동하고는 뗄레 뗄 수가 없습니다.ㅎ 기성세대들이 가진 수많은 추억 중 하나쯤은 명동에 있을 것이며 각 개인의 기억...지금 그 위상은 줄어들었을지라도 여전히 명동을 빛나게 하는 것은 아직도 건재한 건물, 골목에 묻어 있는 크고 작은 추억의 편린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표류했던 그 시절의 우리들!~

 

'**일상생활** > 천주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주교 전주교구 금마성당  (0) 2023.10.26
마라도 성당(2023. 6.24)  (0) 2023.06.30
천주교 제주교구 화순성당  (44) 2023.04.26
제주교구 천주교 남원성당  (0) 2022.12.16
부산죽성드림성당  (0) 202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