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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제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 대학에서 장애인을 선발하는 곳은 서강대학교 한 곳뿐이었습니다.

차별도 차별이거니와 각 대학에 장애인의 대한 시설이 전무하였기 때문이지요.

당시 서강대학교에는 외국인 총장이 있었고 그는 '공부는 다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천재(?) 장영희를 학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장영록 교수의 영향을 받아서

영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모교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합니다.

한 살때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인이 된 그녀는, 미국유학 중 유방암 판정을 받고 완치했으나, 

2004년 두 번째 척추암 발병. 그리고 간암까지 투병 중  2009년 5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이 책은 그녀가 세상을 하직한 후 1 주일만에 발표되었고,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그녀의 가족들이 기부한 책의 인세는 지금도 서강대학교 '장영희 장학금'으로 매해 지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책 소개를 해 볼게요.

책의 내용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 제자 이야기, 가족과 본인의 이야기. 유학이야기.

그녀가 암투병을 하면서 세상과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애절함 등이 묻어 있어요.

명사들의 이야기를 인용했고, 흔한 미사여구 한 줄이 없으며,

속된 말로 잘난 여자의 잘난척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래 나열한 글들은 그녀가 쓴 글이며, 제가 읽으면서 공감했던 이야기입니다.^^

 

Chapter 1.

20년 늦은 편지(사랑하는 아버지께)

아버지의 재능, 부지런함, 명민함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저는 아버지가 하신 일.

아버지가 하고 싶으셨던 일까지 모두 닮고 싶어 아버지가 보셨던 것과 똑같은 강, 똑같은 하늘, 똑같은 길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는 '잊히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떠난 사람의 믿음 속에서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Chapter 2.

돈이냐. 사랑이냐 (제자 수미의 일기)

나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둘 다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다.

내 친구들은 자주 영화를 보러 가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 못 갈 때가 많다.

남들이 롯데월드에 갈 때 우리는 노고산에 가고, 남들이 큰 분식점 거구장에 갈 때 우리는 분식집에 간다.

그의 집이 너무 가난하고 식구가 많아서 그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까지 어머니께 갖다 드려야 한다.

어디선가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 문으로 빠진다.라는 말을 보았다.

가난이 싫어서 어떤 때는 그와 헤어질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

Chapter 3.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던 일, 온몸의 링거 줄을 떼고 샤워 한 번 해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일.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며 밥그릇만 보아도 헛구역하던 일.

그런 일들은 의도적 기억 상실증처럼 내 기억 한 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 있어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회생되는 파편일 뿐이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 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 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독자들과 같은 배를 타고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Chapter 4.

스물과 쉰.

나도 스무 살 때쯤엔 쉰 살 먹은 사람들을 보면 스무 살이 나이 먹어 저절로 쉰 살이 되는 게 아니라

애당초 쉰 살로 태어나는 무슨 별종 인간들처럼 생각했다.

눈가의 잔주름과 입가의 팔자 주름을 짙은 화장으로 필사적으로 감추고,

단순히 생물학적 연륜만으로 아무 데서나 권위를 내세우고,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려 일부러 크게 웃고 떠들고,

가난한 과거에 진 원수를 갚듯이 목젖이 다 보이게 입을 쩍 벌리고 먹는,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슬픈 존재들....

어떤 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노년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 보니 늙는다는 것은 기막히게 슬픈 일도, 그렇다고 호들갑 떨 만큼 아름다운 일도 아니다.

에필로그

희망을 너무 크게 말했나.

"한 눈먼 소녀가 아주 작은 섬 꼭대기에 앉아서 비파를 켜면서 언젠가 배가 와서 구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비파로 켜는 음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물이 차 올라 섬이 잠기고 급기야는 소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와서 찰랑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는 자기가 어떤 운명에 처한 줄도 모르고 아름다운 노래만 계속 부르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그녀는 자기가 죽는 것조차 모르고 죽어 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은 너무나 비참하지 않나요?" 그때 나는 대답했습니다.

아니, 비참하지 않다고. 밑져야 본전이라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든 안 부르든  어차피 물은 차 오를 것이고,

그럴 바엔 노래를 부르는 게 낫다고. 갑자기 물이 빠질 수도...

소녀 머리 위로 지나가던 헬리콥터가 소녀를 구해 줄 수도 있다고.

그리고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그 말은 어쩌면 그 소녀보다는 나를 향해 한 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