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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2020-83)

 

목민심서

정약용 / 류광수 역해

하서

 

 

***조선시대의 대학자 애국애민이 철저했던 다산 정약용 아버지 정재원-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진주목사에 이름. 치적을 남긴 명관이며 학자 어머니 윤 씨-시조작가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후손. 그림으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손녀. 세상을 잘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경세택민, 과학적 객관적인 실사구시의 학문적 태도, 그는 정치학자이고 문학의 대가다. 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가장 위대한 학자로 평가되며 서학을 통한 과학지식을 도입함.

<목민심서> 목민관들이 지방의 관료 체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간단히 제기하고 그 해답과 주석을 붙인 것이다. 당시의 사회 견제 형편과 이를 비판한 내용들이 담겨 있고, 부패가 극에 달한 조선 후기의 정치 사회 상황을 엿볼 수 있어서 근세사 연구에 참고할 만한 사료이다. (논술 수능 필독도서)

 

1776년 (영조 52년) 훗날 대성을 위한 면학 준비의 시기.

1783년 (정조 7년) 회시에 합격, 진사가 됨.

1789년 (정조 13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합격(장원급제),

            글을 좋아하고 인재를 소중히 여김. 정조의 총애와 신임을 받음.

1795년 (정조 19년) 서학에 관련이 있다는 혐의로 금정 도찰 방으로 좌천,

           그러나 수시로 정조 임금의 부름을 받음.

1801년 (순조 원년) 신유사옥 천주교도에 대한 대박해로 형제 모두 체포.

            약종은 참형, 약전은 신지도 약용은 강진 유배.

1801~1818(순조 18년) 19년의 긴 귀양살이, 그러나 저서와 제생 교육을

                   즐거움으로 살았고 茶山이라는 호를 얻음.

                   한국의 實學을 집대성한 실학의 태두적 존재,

 

 

제1편 <부임>에서 제4편 <애민>까지는 목민관의 자세를 다루고 있는데, 목민관의 선임의 중요성. 청렴. 절검의 생활신조 백성 본위의 봉사정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수령은 근민의 직으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 신망. 위신을 갖춘 적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편 <이전>에서는 관기 숙정을 전제로 아전, 군가요, 문종의 단속을 엄격히 하고 별감의 임용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현인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제6편 <호전>은 농업진흥과 민생안정을 위해 호적 정비와 전정. 세법 등 부세제도의 개선을 통해 권농, 흥산의 부곡 책을 도모할 것을 내세우고 있다. 수령 직무 중 가장 어려운 일을 전정으로 보고, 양전에 있어 관료들이 진전, 은결이라 빙자하고 협잡하는 일을 제거해서 국가재정에 힘쓸 것을 주장했다.

제7편의 <예전>에서는 주자와는 다른 진보적인 교육관을 살필 수 있다.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른 구분을 분명히 하며 기강을 세우라고 한 것. 과예는 과거 보는 재예를 권장하는 것이다.

제8편의 <병전>에서는 첨정, 수포의 법을 폐지, 군안 정리, 당시 민폐가 가장 심했던 군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병역의무자를 조사하여 병적에 기록하는 것이며 군포란 병역의무자가 현역에 복무하지 않는 대신 베를 바치게 하는 것.

제9편의 <형전>에서는 청송, 형옥을 신중히 할 것. 봉건적 형벌제도의 남용을 견제했다. 특히 형벌의 시행은 따로 <흠흠신서>를 저술하였다.

제10편의 <공전>은 산림. 천택. 영전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제시했다. 산업개발 문제와 그 대책을 다룸.

제11편 <진황>은 빈민구제로서의 구황 정책을 다룬 것. 흉년에 빈민의 진휼을 논한 것.

제12편 <해관>은 수령이 임시가 차서 교체되는 때의 태도와 그 뒤에 남긴 치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