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책...책...책

내 아들요요마(2020-71)

내 아들 요요마

마리나 마 존 A 랄로 지음

전원경 옮김

동아일보사 간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도 성장은 고통스러운 일. 힘든 훈련 없이 발전도 없는 법. 난관을 뚫고 희망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마리나가 이 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남다른 귀, 기억력, 반사 능력, 탁월한 조직력, 지성, 통찰력 등을 한 몸에 지니고 태어난 요요마. 가장 협연하고 싶은 연주자... 가장 마스터클래스를 잘 진행하는 음악인 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던 요요마.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그의 음악 교육 배경과 관련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요요마가 갓난아기 시절부터 열일곱 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치열했던 성정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요요마의 어머니 마리나 마가 구술했고 존 A. 랄로가 대화체로 기록하여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린 천재 요요마가 연주자 성장과정과 가족 간의 앨범도 흥미롭다. 1996년 홍콩에서 발간된 이 책은, 요요마의 아버지 음악학 박사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였던 하오 치운이 아들을 위한 훈련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24쪽 1955년 10월 7일. 3.4Kg의 사내아이가 파리에서 태어났다.

세례명은 어니스트, 중국 이름은 '요'라고 지어졌다.

'친구'라는 뜻이었다. 가문의 성인 '마'는 말을 뜻했다.

'요마'는 '친근한 말'이란 뜻이며 음악적으로 '요'자를 한 자 더 붙여 '요요마'가 되었다.

43쪽 다른 사람과 음악을 나누기 위해서는 우선 요요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요요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였다.

47쪽 아이들은 칭찬에 목말라 있다. 칭찬은 아이가 특정 분야를 익히는 데에

가장 좋은 원동력이 된다.

68쪽 어린 나이지만 이미 요요는 좋은 연주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활을 쥐는 자세, 정확한 핑거링, 뛰어난 테크닉,

여기에 더해 놀라운 기억력까지 갖춘 요요는 아주 수월하게 새로운 곡을 배우고 익혔다.

75쪽 중궁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곧 '명령'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란다.

117쪽 카네기홀... 1891년 문을 연 뉴욕의 유명한 연주회장.

초창기에는 단순히 '뮤직홀'로 불렸으나,

1898년 강철왕 카네기의 출자로 개축한 이래 카네기 홀로 개명되었다.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크라이슬러, 카잘스, 메뉴인, 아이작 스턴 등

당대의 연주 자기 모두 거쳐간 홀이다.

125쪽 요요와 요우쳉은 집에서 반드시 중국어로 이야기했으며,

아버지에게 매일 두 시간씩 한문을 쓰고 읽는 법을 배웠다.

143쪽 '전미예술 축제'에 요요는 파블로 카잘스 같은 유명인사들과 함께

이 축제의 자선 갈라 콘서트에 초청받았다.

157쪽 요요의 스승 레너드 로즈(1918~1984) 미국의 첼로 연주자, 교육자,

로즈는 연주자인 동시에

당대의 대표적인 첼로 교수로 요요마, 린 헤럴 등을 길러 냈다.

166쪽 사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 부모에게는

축복인 동시에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196쪽 비평은 연주자를 성장시킬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215쪽 지금껏 공부와 연습, 공연박에 몰랐던 모범생에게

선술집의 시끌시끌한 분위기는 더욱 매력적인 것이었다.

비록 대학생이지만 미성년자인 요요가 술집에 드나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229쪽 마리나나 하오치운의 삶도 쉽지만은 않았다.

마리나는 당시 드물게 프랑스 유학까지 한 중국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키우느라 성악가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다.

231쪽 흔히 음악가는 태어나지만 재능은 단련되는 것.

음악은 인종과 민족을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세계인의 언어다.

239쪽 1978년 요요는 에이버리 피셔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해에 하버드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요요의 첨부적인 유머 감각과 관대한 성격 따스한 인간성은 변함이 없다.

246쪽 테이블 위에는 요요가 사용하는 첼로, 가격을 환산하기조차 어려운

1712년 산 스트라디바리가 놓여 있었다.

바로 전설의 자클린 뒤 프레가 쓰던 명기였다.

250쪽 마리나..."시간은 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도 결국은 시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