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시집 '춤'등을 냈으며 제15회 동서문학상,
제10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어느 문학 강연회에서 시를 왜 쓰냐고 누가 묻기에 이렇게 되물은 적이 있다.
밥은 왜 먹느냐고 그러자 그는 '허기져서' 그렇다고 하였다.
'나는 아름다움에 허기져서 시를 써요.'
내가 말해 놓고도 그 말이 그럴싸했지만 술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점점 멋쩍어지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24쪽)
[아름다움에 허기지다.]
[박형준 산문집]
[창비]
제1부는 소소한 내 이력에서 나온 소박한 산문과 시에서 느낀 이야기에 해당하는 것들이고,
제2부는 시인론으로도 볼 수 있는 인터뷰를
제3부는 시집 발문이나 시 해설을
제4부는 2005년[창작과 비평]에 '계간평'형식으로 1년간 연재한 글을 실었다.
(책머리에,,, 저자 박형준)
<본문 중에서>
가난했던 자기 삶과 가족, 시에 대한 글....
글쓰기가 여전히 지독히 어렵다는 박형준 시인은, 유독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산문집에 많이 피력했다.
탄광촌에서 배운 일본 노랫소리에 아버지의 삶을 서글프게 요약하고 있고,
이스트만 넣고 빵을 부풀려 만들어 주셨는데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았던 모든 것이 그에게 詩가 되었다.
25쪽 시란 고상한 것이 아니라 밥에 얽매여 있는 샐러리맨의 고뇌와 내면이 될 수도 있으며, 점심 무렵 홀로 골목이나
고궁을 거닐면서 사물들과 자신만의 화법으로 나누는 대화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34쪽 "뱀의 입안에서 가까스로 목이 남은 개구리처럼 그렇게 허공에 대고 하는 고백
이성복[장봉현 선생에게][작가세계]2003년 겨울호 34면
135쪽 빵이 필요할 때 당장 없어서는 안 될 때 누가 빵에 대한 글을 씀으로써 빵에 대한 욕구를
대치시킬 수 있을까. 한 인간을 죽여야 할 때,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때 누가 그 인간에 대한 증오로
그 인간의 죽음을 대치시킬 수 있겠는가.
145쪽 지팡이를 손에 쥔 채 밴치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는 노인은
어둠이 깊게 스민 주름살 때문에 눈이 더욱 크고 슬퍼 보였다.
문득 삶의 본질은 안 좋은 거. 기쁨보다는 슬픔 속에 있다는 그의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50쪽 "이불 밖으로 나온 두 다리 허벅살은 수백억 년이나 된 것 같고 희고 은밀하고 빛나는
역사는 수백억 광년이나 될 성싶은 여우 같은 아내.
그리고 그 곁에서 "1,2년 광년쯤 된 아이들"이 자고 있다.
180쪽 "빈집에는 새들이 많아! (시인 최하림)
155~156쪽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나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천상병 [소릉조] 전문)
210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들이 본질보다는 허상에 빠져 산다는 것,
즉 실재보다는 이미지로 우리의 소중한 삶을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미당의 시)
213쪽 이시영의 나를 그리다... 전문
욕망이 그리다 만 결코 실현된 적 없는 긴 미소 자국.
그 아래 굳게 다 눈 입,
입가에 알듯 모를 듯 깊게 파인 주름,
언제나 인색했지만 화낼 때에는 더욱 좁혀져 볼품없었던 양미간.
의심은 많았으나 때론 가득한 열정으로 불타 올랐던 두 눈,
그때나 이때나 축구장처럼 시원한 이마,
그리고 바람에 갈기 날리던 머리,
한 번도 주먹에 으스러져본 적 없는 강한 턱..... 중략
220쪽 할아버지 염할 때 할아버지 한 손에 내 손을 쥐어 주던 고모
"얘 병 좀 가져 가요."
그 고모 돌아가시기 사흘 전
"내가 가다 네 병 저 행주 강에 띄우고 가마" [박철 시인의 고모]
241쪽 [나희덕의 엘리베이터]
홀수층에는 산자가, 짝수층에는 죽은 자가 타는 공간이다. 그들이 만나는 곳,
삶과 죽음이 엷어지는 공간이 일층이다.
홀수층 엘리베이터에는 "병든 입으로 들어갈 밥과 국을"나르고
짝수층 엘리베이터는 "더 이상 박과 국을 삼키지 못하는 육체를"나른다.
253쪽 장철문의 하품-통증-마술은 그가 그렇게도 버리고자 한 낡은 프로펠러의
부속품들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빚쟁이는 만나서 괴롭다.'
삶에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거.....
285쪽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된 아이는 어머니가 먹는 것을 먹고 아이의 똥은 어머니가 먹는다.
내가 네가 되는 미분화 상태, 음과 양이 나눠지기 이전의 태극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289쪽 아내는 몸에 통풍하는 나이가 되어 맛난 것 만들어 놓고 보니 한입이라도 덜기 위해 지웠던 아이들이 이 자연의 바람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시 속의 장면에 이르러 나는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기쁨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는다.
들판에 핀 민들레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이 말처럼 통풍 들 나이가 된 아내는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원망하지 않는다.
303쪽 똘스토이 소설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의 한 대목인 "죽음이 침상 모서리까지 와 앉아 있다.
311쪽 90년대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시 세계는 자기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상처가 시작되는 지점을 우리 현실에 대입하여 보여 주었다.
마치 뒤를 돌아보며 앞으로 내달리는 타조처럼 이들의 시는 기억과 현재의 통합을 아슬아슬한 내달림으로 형상화해 왔다.
337쪽 거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기 원하며 그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삶은 어느새 이상이란 낡은 단어를 거울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우리 시에서 나타난 환상은 김수이가 말한 '발명'이지만 그것은
가공된 상처이며 상상이다.
359쪽 시인은 폐허 속에서 발견된 부장품을 가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악기.
즉 상징을 만드는 이가 아닐까.
상징은 결국 '뒤로 가는 실험'이라는 전영 혼과 '앞으로 가는 실험'이라는 현 영혼이 섣불리
목적의식이나,
유폐. 피안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서로 강력하게 결합되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숨을 잘 쉬게'
구원에 대한 예감을 꿈꾸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詩語들은 내게는 어려운 단어들로 다가왔다. 많이 어려웠다.
그러나 책의 내용에는 주옥같은 언어들도 많아서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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