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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책...책...책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6권

 

2017년 2 울 7일 오전 7시부터 12시까지 5시간 동안 완독.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진지하고 재미있어서.

 

동포야 일어 나라

기회가 왔다. 강토를 탈환하라

외치자 대한독립 되찾자 조국강토

(193쪽에서)

 

 

이 때를 기다리고 10년 동안에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 군사야

자주독립 광복함이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깃발 날리는 곳에

정의 군대 낙엽같 이 쓰러지리라

 

 

탄환이 빗발 같이 퍼붓더라도

창과 칼이 네 앞을 가로막아도

대한의 용감한 독립 군사야

나아가고 나아가고 다시 나아가라.

최후의 네 핏방울 떨어지는 날

최후의 네 살 범 떨어지는 날

네 그리던 조상 나라 살리라

네 그리던 자유 꽃이 다시 피리라.

 

(303 쪽에서)

 

 

 

25. 회오리바람

장사꾼 차림의 양치성은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잡화상으로 섞이고 화투 작보다 작은  증명서를 가지고 신의주로 떠난다. 그는 조선을 비하하고 일본을 추앙하는 밀정. 송수익은 대종교 교당에서 조국에서  온 사람들을 먹고사는 일을 살피나 대종교 창설 8년 만에 대종교 지주 나찰이 교의 확장을 유언으로  남기며 자살한다.

 

26. 육혈포 강도

백남일과 도리 우치의 싸움. 백남일에 대한 서무룡이의 복수(보름이 문제) 백종두는 아들 백남일이 몰매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비보를 접한다. 급전을 빌려 주고 빌려 받는 장덕 풍과 받는 정재규(노름)..... 서무룡 건달패는 여자들을 윤간하고 정재규 집에 머물며 온갖 흉악한 짓을 일삼는다. 육혈포 강도라는 것은 대한광복단 살인사건을 두고 한 말인데 빠르게 번져 나갔다. 공허는 전라도 지부장 이병호와 총사령관 박상진을 만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해서 청년들을 만주에 보내는 일을 적극 수행한다.

 

27. 서당을 없애라.

손판석이 감지한 부두 노동자들의 새 조합결성 움직임. 나라를 되찾기 위한 2가지 사업은 독립군 양성과  서당교육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8,000 여개의 늘어 나는 서당을 공립학교와 똑같이 감독하고 감시하며 탄압을 자행했다. 토지조사를 최대한  이용해서 하시모토는 죽산면의 논과 밭을 반 이상을 가지게 되고 조선총독부는 조선 땅의 45%를 차지하게 되었다.

 

28. 뙤약볕 진펄 밭

정도규의 심한  갈증 무더위가 지글거리고 있는 들판은 진펄 밭처럼 걷기 어려웠다.  그는 진펄 밭에서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 속에 오늘 본 아이들과 농부들이 섰여 있었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형으로부터 가솔들을  독립시키고 재산을 지키려고 정도규는 형에게 딱 잘라서 말한다.

 

29. 만주의 함성

보름이는 동생 친구 김시국도 싫고 양치성이도 싫다. 결국 양치성의 여자가 되었지만.................... 만주 땅의 설한풍이 몰려오는 11월의 열풍. 독립지사 39명의 이름으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된다. 노령의 이동휘 이범윤. 중국의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미주의 안창호 이승만을 대표로 포괄적인 최초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고 드디어 1918년 11월 13일 일제히 우리들의 함성은 터지기 시작하였다

 

30. 폭풍전야

상해 신한청년단의 김구 여운형, 미국 워싱턴 국무성 앞의 이승만. 동경 유학생회 웅변 대회장의 정도규. 하와 이국민 군단 방영근 남용석, 칸 다쿠 조선기독교 청년회관, 중앙학교의 밤 모임의 최남선, 전 민족운동으로 확대 결정하였다. 동경의 2.8 선언으로 모든 운동세력들이 대연합이 이루어졌고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경성의 전학생들까지 가세하였다.

 

31. 폭발하는 화산

갈수록 늘어 나는 만세시위, 종로거리 파고다공원 광화문 고종의 장례식이 열리는 대한문, 남대 문경 성역 공허가 내려 간 학생들이 주축이 된 군산 본전 통, 공허의 바랑 속에서 나왔던 독립선언서는 군산 부두 노동자들에게 건네 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그들을 일본 순사나 그 끄나풀들이 꺾기에는 어림없는 역부족이었다,

 

32. 무장투쟁의 대열

만세시위를 주동하거나 만세운동을 계기로 독립투쟁쪽으로 나선 많은 청년들이 압록강을 건너서 만주 땅으로 오기 시작하고 통화현 일대의 유인석 의병부대 등이 대한독립단을 만들고 복벽주의를 내세웠다. 홍범도 부대의 공격은 두만강을 건너 갑산과 혜산진 등의 일본군 병영을 습격한 소문이 퍼졌었는데 이 공격이 만주 지역의 여러 독립 단체들이 꾀하고 있는 무장투쟁의 첫 신호탄이었다.

 

33. 가면극 

하와이 김칠성 아들의 돌잔치.  방영근은 나이 40에 장가도 들지 못한 처지와 국민군단이 해산된 심란함이 엄습한다. 친한 박용만까지 만주로 떠난 후 그는 말수가 적어지고 우울하게 변해 갔다. 백남일이는  장덕 풍의  잔치에 참석하는데  아버지 백종두가 없는 관계로 모든 것이 사라졌음을 실감하고 백남일과 장덕풍 그의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주눅이 든다.

 

34, 독립전쟁의 깃발

이광민과 김명훈의 만주 입성. 도산 안창호의 1920년의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모든 국민의 병사화. 독립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고 홍범도 부대도 이름을 대한독립군으로 바꾸며 일본 군복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며 부대 연합을 마친 독립군은 소규모 작전을 준비하게 된다. 홍범도의 다정하고 따뜻한 인품.  홍범도 장군을 대하는 동포들과 아이들의 그 추앙으로 또 한 번 이광민은 놀란다. 제1 제대는 김좌진. 제2 제대는 이범석으로 하는 청산리 백운평의 전투. 그리고 홍범도의 작전도 성공으로 끝난다.

 

35. 대학살

전투에 형편없이 진 일본군은 독립군을 도운 동네의 평범한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학교와 시 교당 예배당을 포함하여 도합 집 3천 채를 불사르고 여자들을 강간했으며 일만여 명을 처단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기세 등등했는데 우리는 이 사건을 경신참변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