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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경복궁 향원정과 집옥재일원 (5)

경복궁 향원정. 집옥재.건춘문. 영추문과

세자가 머물던 자선당과 비현각입니다.

 

 

경복궁 향원정

 

 

<경복궁 향원정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누각(). 2012년 3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복궁 건청궁 남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누각은 사방의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여러 층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말한다. 전각의 명칭인 '향원()'은 '향기가 멀리간다.'라는 뜻으로, 중국 북송시대의 유학자 주돈이(, 1017 ~ 1073)가 지은 《애련설()》에서 참고하였다. 현판의 글씨는 고종이 직접 썼다. 

 

1885년(고종 22) 즈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립 당시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잘 남아있다. 향원정의 연못을 건너는 다리인 취향교는 6.25 전쟁 당시 훼손된 것을 1953년에 복원하였으나, 그 위치와 형태가 다르게 복원되었다. 2017년 향원정 보수공사를 하면서 취향교를 원래의 위치에 본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하기로 하였고, 2021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복궁 향원정 [Hyangwonjeong Pavilion of Gyeongbokgung Palace, 景福宮 香遠亭]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경복궁 향원정

 

이 정자는 왕과 그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육각형 모양의 초석과 평면 그리고 육모지붕 등 육각형의 공간을 구성하여 비례감을

두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으로 가치가 높습니다.

연못 위에 핀 수련과 연꽃은 보지 못했지만

어디에서 담든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험길당

고종의 침전으로 씌인 건물입니다.

 

 

경복궁 집옥재와 팔우정

1888년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고종의 거처를 옮기면서 이 곳으로 이전 당시

청나라에서 많은 책을 들여 와서 고종의 서재로 사용하였고,

또 다른 용도로 외국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했습니다.

 

 

경복궁 신무문

경복궁의 4대문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으로

멀리 청와대가 보입니다.

 

 

저는 오늘 청와대를 보았습니다.

가방을 열어서 보여 주고.... 검문을 마친 후에....^^

 

 

경복궁 건춘문

천정에 널판을 대고 그 위에 용을 그려서 궁성의 출입문임을 상징하고 있었고,

일본인들에 의하여 조선총독부청사가 세워진 뒤로는 광화문을 대신하여 경복궁의 정문으로 사용했답니다.

원래는 문반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이었는데요.

 

 

경복궁 영추문

영추문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의 건춘문과 짝을 아루고 있고,

"영추"란 가을을 맞이한다는 뜻이예요.

 

 

경복궁 영추문

 

이제부터 세자와 세자빈만의 공간인 자선당과 비현각을 보여 드립니다.

 

 

연태문

"태평을 맞이한다."라는 뜻이 들어 있고,

 음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라는 뜻에서 지은 것 같다고 합니다.

문 안으로 만춘전이 보입니다.

만춘전 뒤쪽 동편에 이 연태문이 있었거든요.

 

 

동궁으로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생활하던 곳.

한적한 곳에 있었어요.

공부도 해야 하는 세자를 배려했겠지요?

 

 

자선당으로 들어 가는 진화문.

"왕세자가 변화됨" 기대하는 뜻으로 문이름을 지은 것 같아요.

한 나라를 움직이는 왕도 자식의 교육에는 자상하고 완벽했음을

이 현판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을 잇는 마당.

 

 

태모문

비현각으로 드는 문으로 비현각은 왕세자의 빈이

침식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곳입니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아주 한적한 곳에서

알콩달콩 살았을 것 같아요.

태어난 배경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왕도 자유로운 신분은 아니었습니다.

권력은 휘두르지만 자유롭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일 겁니다.

 

 

비현각

왕세자가 공부하던 곳으로 스승으로 부터 공부를 했던 세자만의 학교이었습니다.

 

 

자선당과 비현각의 뛰뜰.

 

 

유난히 여기의 건물들은 새 것이네요.

태원전 마지막에도 언급했듯이,

대목장으로써 20년을 경복궁으로 출근하였다는 분의

기사를 접하고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 뒤에 우리처럼 감탄을 아끼지 않는 관람객이 있는 것이구요.

 

 

 

 

자경전 정문(미소님 사진입니다.)

 

조선의 왕족은 오로지 "전주이씨"였어요.

제가 전주이씨이니 어딘지 왕족의 피가 흐를까요?

그 흔한 전주이씨인데 잠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향원정으로 올라 가면서 담은 경복궁의 모습입니다.

조선의 법궁답게 정말 아름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