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다. 처음 창건 때는 유사시에 왕이 본궁을 떠나 피우(避寓)하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궁의 규모가 크고 여러 임금이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불리고 중요시되었다. 이 궁이 창건된 것은 1617년(광해군 9)으로, 당시 광해군은 창덕궁을 흉궁(凶宮)이라고
꺼려 길지에 새 궁을 세우고자 하여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仁慶宮)을 창건하였다.
그런데 다시 정원군(定遠君)의 옛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궁을 세우고 경덕궁이라고
하였다. (다음백과)
1618년에 세워진 건물.
숭전문
여전히 복원중이라서
마치 현대에 새로 지은 궁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숭전전
왕이 업무를 보던 곳.
앞쪽으로 품계석들이 보인다.
숭전전의 내부.
다른 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숭전전 뒤 쪽으로 가면 또 하나의 관문이 나온다.
바로 "자정문"이다.
자정전.
주로 편전으로 사용했다.
숭정전
주위는 행각으로 둘러 싸고 사방에 문을 두었다.
궁이 그 규모가 작고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물론 평일이기도 했지만.
숭전전을 둘러 싸고 있는 화랑
삭막한 도시 건물들은 식상하지만
도심에 이런 궁이 있다는 것은 느낌이 참 남다르다고 생각을 한다.
특히 단청문양이 화려하다.
가장 많이 파괴되었다는 경희궁은 규모도 작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줄어 든 궁전이다.
서암.
서암옆에서 샘물이 솟았다고 전해 지는 암천
지금도 물이 고여 있다.
태령전은 안에
영조의 초상화를 모셔 두었던 건물.
보기에도 대단했던 느티나무 고목.
세월을 묵묵히 견뎌 온 나무들도 아프다.
사람들이 세월의 무게에 견디다 못해서 아픈 것 처럼.
경희궁에서 바라 본 도심.
한가롭기만 하다.
문화재청은 2015년 7월 한 달동안 조선시대의 4대궁과 더불어서
조선왕릉을 모두 무료로 개방한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문화재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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