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나들이만 해도 꽤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안쪽에서 본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敦化門)입니다.
현존하는 궁궐의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구요.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돈화문에 있는 물건 맡기는 곳에 연결되어 있는 행랑.
창덕궁의 錦川과 錦川橋
임금이 계신 곳과 바깥세상을 가르는 의미있는 곳이며 조선궁궐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
처음에는 무서운 호랑이상이 다리 끝에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랜 세월 끝에 지금은 애완동물처럼 귀여운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정조시대를 보면 유난히 규장각에 대한 내용이 많습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지었거든요.
"규장"이라는 것은 임금의 시문이나 글씨라는 뜻으로 왕실의 도서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창덕궁의 대문 돈화문을 지나면 금천교가 나오고,
금천교에서 바라 보면 진선문이 나옵니다.
지난 번 수원행궁에서도 보았듯이 진선문 앞에도 "어도"가 보이네요.
가운데 길은 임금이 다니시고 양쪽은 신하들이 다니던 곳입니다.
진선문은 "선한 말을 올린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이 숙장문은 "성숙하고 아름답게 빛난다."라는 뜻이 있어요.
문 하나하나가 가치있고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인정문
인정전으로 가는 마지막 문입니다.
돈화문, 진선문,인정문..이렇게 3개의 문을 거쳐야 임금이 계시는 곳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는 곳.
인정전입니다.
궁궐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식을 치르는 공간이예요.
이 마당에서 외국사신을 접견하기도 하고 인정전 곳곳에 고리가 있는데
햇볕과 비로 부터 왕을 보호하기 위한 차일을 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깔린 돌들을 보면요.
사방으로 물이 흐르게 되어 있어서 비 올때 물빠짐을 염두에 두었고,
돼지가죽신을 신었던 신하들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울퉁불퉁한 돌을 썼답니다.
햇빛에 반사하는 것도 막았는데 선조들의 지혜는 대단해 보였어요.
저 분은 해설사 선생님인데요.
저도 우리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해설사 선생님의 도움이 훨씬 체계적이었습니다.
인정전 안의 모습인데요.
마루바닥이었구요,
구한말 서양문물이 들어 오면서 커튼과 서양식 가구를 들여 왔다고 합니다.
왕의 색깔을 나타내는 황금색...화려하던데요.
이곳을 행랑이라고 하는데 인정전 사방에 걸쳐 있었어요.
이 곳의 목적은
소리를 모아서 신하들에게 왕의 말씀이 잘 들리게 한다는 것 같았어요.
‘선정(宣政)’이란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는 뜻이며,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입니다.
편전이란 임금과 신하가 정치를 논하고, 유교경전과 역사를 공부하는 곳을 말하는데요.
다른 전각들과 달리 지붕도 청색 유리기와로 덮은 청기와이며,
선정전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집입니다.
창덕궁 희정당
창덕궁 희정당
"희정당"
임금의 거처이며 가볍게 집무를 보던 곳.
불에 타서 소실된 곳을 1920년 복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부는 유리창문.샹들리에등 서양식으로 지어 졌다네요.
선평문
대조전으로 들어 가는 문
대조전 부속건물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전인데요.
위의 사진은 왕의 집무실이기도 하고 아래 사진은 왕비와의 합궁을 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들려 주는 야사로는 왕과 왕비가 합궁할 때
옆에 신하와 내시들이 있었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사극에 나오는 것 처럼 커튼 밖에 있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왕도 자유롭지는 못했던 거예요.^^
"보춘정"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는 위의 건물에 붙어 있는 곳으로 (아래),
여름에 많은 사람의 경연이 열리거나 손님을 맞는 장소였습니다.
임금의 건강을 돌보던 곳.
음식을 만드는 수랏간입니다.
원래의 모습은 불타 없어지고 다시 복원했다고 합니다.
수도꼭지가 있고 오븐이 있어서 놀랐답니다.
창덕궁의 건물은 놀랍게도 48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 목조건물이어서 화재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데,
그래서 땔감으로 불을 피우고 "백탄"으로
위를 덮어서 예열로 건물의 난방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문화재를 훔쳐 간(?)일제의 이 아궁이를 일본에서 본
미국사람이 발명한 것이 놀랍게도 보일러라고 하더라구요.
우리의 문화와 선조의 지혜는 정말 대단합니다.
고종이 어렸을 때 쓴 현판입니다.
"집희"
힘이 없고 잘 쓴 글씨는 아니라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세자의 교육장(성정각)으로 들어 가는 문.
"봄처럼 고운 문"이라는 창덕궁의 동문
언제나 그렇듯이 문화유산에 대한 포스팅은 참 어렵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역사에 대한 짧은 지식과 많은 사진들 중에서
중요한 것만 사용하는 것도 저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요.
이렇게 잠시 역사를 돌아 보고 정리하는 일은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창덕궁은 조선시대 경복궁에 이은 두번째 궁궐로,
자유롭게 지형에 맞게 지었다고 합니다.
70%이상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궁궐로 매우 중요한 고궁이구요.
우리도 잘 보존해서 후세에 물려 줄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보여 지네요.
부족한 글과 사진을 끝까지 보아 주신 블로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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