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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세상이야기

육 남매 모임.

띠동갑 형을 잃은 율곡 이이 (1526~1584)....늦장가를 가서 아직 어린 형님의 소생 조카 2남 2녀와 형수를 건강과 정치 문제로 서울에서 해주로 다시 서울로 자주 이사를 하게 되었을 때 꼭 같이 이사를 했고 보살폈다고 합니다.

또한 선친들이 남긴 재산을 분배의 원칙에 따라서 선조들의 제사와 묘소 관리를 위한 토지 등을 배정한 다음 태어난 순서나 성별과 관계없이 7남매가 균등하게 나누었다고 해요. 우리는 이이의 학문적 사회적 성취에 주목해 왔지만 그가 나눈 남매간의 정과 사랑은 오늘 우리의 가족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조선가족실록'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사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개오름"

 

남편의 친구 부인이자 올레길 동행 동무였던 로사는 육 남매의 맏며느리이고,

저와 고등학교를 같은 해에 졸업한 로사는 저보다 한 살 아래입니다.

로사 부군은 남편의 오랜 친구라 이미 아는 분이었지만

제주살이 7년 차인 로사는 제주에 와서 처음 얼굴을 보았어요.

 

저는 이 댁 육 남매들이 한 달 한 번 모임을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고,

그 육 남매의 유대감에 더욱 놀랐습니다. 지금도 시댁 모임을 위해서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꼭 서울행 비행기를 탑니다.

 

 

이 댁은 예로부터 서울에서도 4대 문 안 재산이 많은 유복한 집안이었고, 70이 넘은 두 시누이님을 비롯하여

그 육 남매의 학벌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데, 솔직히 저는 그런 것들이 그리 부럽진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어진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면 되니까요.

그러나 남매들 간의 끈끈한 정이 저는 정말 부럽습니다.

 

제가 제주에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 모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로사 부부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인데요. 혼자 잘한다고 되는 문제는 절대 아니지요.

육 남매 중 어느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생각의 방향이 다르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유추해 보건데, 일단 시부모님들께서 재산분배를 잘하셨고, 위 두 분의 시누이들이 이 모임을 이끌고 있으며

맏며느리인 로사를 비롯해서 둘째 며느리도 이 모임에 적극 협조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시누이도 없고 두 형제만 있는 집의  맏며느리인데

비교해 보면 제가 덕을 쌓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 부부를 보며 반성도 하고 있지만 참 씁쓸하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