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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세종대왕릉(英陵)...경기도 여주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릉

조선 제 4대 세종과 소현왕후 합장릉.

 

 

 

 

광화문에 있는 세종의 동상은 앉아 계신 상이고,

이 곳에는 서 계신 상이네요.

 

 

 

 

제관들이 머물며 제례를 준비하던 집.

 

 

 

 

훈민문.

 

 

 

 

금천교가 참도 중간에 조영되어 있었는데,

아쉽게도 물이 흐르고 있진 않았습니다.

 

 

 

 

홍살문

홍살문의 형태는 門자를 형상화 하였으며 화살의 표시는 나쁜 잡귀나,

무례한 귀신이나, 불순한 사람이 침입할 때는 활로 쏘아 버릴 것이라는 상징적 의미라고 합니다.

 

 

 

 

왼쪽 높은 길은 신이 다닌다고 해서 신도.

오른쪽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곳이라 해서 어도.

 

 

 

 

소나무의 운치도 훌륭했습니다.

 

 

 

 

수라간

 

 

 

 

 

 

 

 

정자각

제향을 올리는 곳.

 

 

 

 

 

수복방

 

 

 

 

 

 

 

비각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 놓은 곳.

 

 

 

 

이 곳에서 700m를 따라 "왕의 숲길"이 펼쳐 진다네요.

 

 

 

 

세종대왕릉 영릉(英陵)

드디어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 나타납니다.

  조선최초의 합장릉이라고 하네요.

 

 

 

 

세종대왕은 조선 제 4대왕으로 3대왕인 태조 이방원의 셋째 아들로 1397년에 태어 났고,

재위 32년 동안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설치, 6진 개척, 쓰시마 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경제, 문화 전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또한 소현왕후는 청천부원군 딸로 1408년 충녕대군(세종)과 가례를 올렸고, 세종과 사이에 8남2녀를 두어

조선의 왕비로는 가장 많은 자녀를 두었고,

궁궐 안주인의 소임을 훌륭하게 수행하여서 후궁들의 질투가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1446(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는데,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고,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고 합니다.

 

(다음백과에서) 

 

 

 

 

 

 

영릉 주위에 있는 석마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英陵 과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寧陵

사적 제195호(1970.05.26 지정) 두 개의 영릉이 있습니다.

 세종대왕능인 영릉(英陵)과 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이 불과 700여 미터 거리에 있고,

"왕의 숲길"이라고 해서 연결되어 있어요.



역사공부도 하고 나들이로도 좋은 여주의 두 영릉.아주 훌륭한 곳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