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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효종대왕릉(寧陵)..경기도 여주

 

 

 

 

효종대왕의 제실

 

 

 

 

재실공간 내에 회양목과 향나무.

그리고 재실 건축 연대보다 더 오래된 500년 이상의 느티나무와 함께

어우러져 재실의 역사성을 한층 높여 주고 있었습니다.

 

 

 

 

 

관람시간 마감을 앞두고 있어서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더구나 산불예방이라는 차원에서 "왕의 숲길"을 막아서

700미터 밖에 되지 않은 가까운 곳을 20분이나 돌아 왔어요.^^

5월부터 10월까지는 숲길을 개방한다고 하니 두 곳의 관람은 훨씬 쉬울 것 같습니다.

 

 

 

 

이 제실에서 효종대왕릉까지 그리 멀진 않았어요.

 

 

 

 

 

 

 

 

효종대왕릉의 입구에 있는 홍살문

 

 

 

 

수복방

 

 

 

 

정자각

 

 

 

 

비각

 

 

 

 

 

 

 

 

 

 

 

 

 

 

 

 

 

 

 

 

 

왕의 숲길

700m 걸어 가면 세종대왕릉이 있어요.

 

 

 

 

효종대왕릉

 

 

 

 

효종은 어려서부터 기국과 도량이 활달했고, 장난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행실이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또한 타고난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인조가 항상 효자라고 칭찬해 사랑과 기대가 특별히 높았구요.

그래서일까요?

인조의 왕위는 장자인 소현세자가 아닌 둘째 아들 봉림대군이 이어받았는데,

물론 봉림대군이 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인조의 미움을 받고 있던 소현세자가 설령 살아 있었다고 해도 왕위를 물려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효종은 1명의 정비와 3명의 후궁을 두었으며, 그 사이에 1남 7녀의 자녀를 보았고,

정비인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는 장유(張維)의 딸로 1630년(인조 8)에 당시 봉림대군이던 효종과 혼인했습니다.

효종과 함께 심양에서 8년간 인질 생활을 했으며, 18대 왕인 현종을 비롯해 여섯 공주를 낳았다.

 

-다음백과에서-

 

 

 

 

효종대왕릉 역시 한자는 다르지만 세종대왕릉과 같은 영릉이라는 이름을 지녔습니다.

능의 형태나 구조는 세종대왕릉과 비슷한 형태인데요.

당시 청에 맞서 강력한 북벌론을 지향했던 효종의 기세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효종의 정비 인선왕후릉

 

효종대왕과 합장하지 않은 것은 "풍수지리설"때문이었고,

인선왕후릉을 보고 효종대왕릉을 올려다 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