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전에 "흥부와 놀부전"이 있습니다.
이 고전소설에서 고약하기로 소문이 난 놀부가 제비다리를 부러 뜨려,
다시 감아 날려 보낸다는 대목이 있는데,
일본 고전에는 "참새 혓바닥을 칼로 도려 낸다"는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이 고전이 민족성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14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국가축구대표팀이 일본을 3:1로 이겼습니다.
도쿄 대전이라고 할 만큼 이 승리를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아마 다 기뻐했을 거예요.
무조건 그들을 이겨야 하는 이유가 오늘 이후 더 뚜렷해졌습니다.
저는 오늘 옛 서대문형무소에 다녀오면서 일제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잔인한 만행에 치를 떨었습니다.
참새 혀를 도려 낸다는 섬뜩한 민족성을 가진 그들.
오늘 같이 추운 날 좁은 골방에서 따뜻한 기운도 빛도 볼 수 없는 곳에서
단지 나라의 독립을 원한다는 죄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또 죽어 간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역사관에서 들리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문화재 사적 제32호 "독립문"
갑오개혁 이후에 자주독립을 다짐하기 위해 세운 기념물.
송재 서재필 박사의 동상
멀리 일제에 항거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비가 보입니다.
독립관
무악재 고개를 넘어 본 일이 없던 저는,
결혼과 함께 고개를 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출근길에 보았던 이 망루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었지요.
교도소에 수감된 가족의 아침 면회를 하기 위해서죠.
1988년, 경기 의왕시로 이전되기 전까지,
버스 차창 밖으로 이 풍경을 매일 보면서 출근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아들의 옥바라지를 위해서 교도소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어머님이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투옥자들의 탈옥을 막고 감시하기 위해 1923년에 설치.
마치 독일의 나치 수용소가 연상되시나요?
높고 험한 벽, 감시를 위한 망루!!
다시 한번 세상사는 원칙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새깁니다.
매표소와 역사관 출입문
서대문 형무소 역사 전시관
중앙사 옆 건물이 제12 옥사입니다.
건물 사이로 제9 옥사가 보입니다.
안내를 따라가며 관람을 했어요.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애국지사들.
옥사 내부...이 장면은 TV에서도 수없이 본 곳입니다.
2층에서도 감시가 가능하며 간수와 연락을 통하는 문과
배식을 위한 문. 감시를 위한 창살.
옛 시설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독방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공간으로 1평도 채 안되었고요.
동물도 아마 이런 대접은 받지 않았을 겁니다.
을사 5 조약문
곽한일 의병자의 칼 (1860~1936)
윤치상 의병장 자서전(1876~1971)
독립선언서
아마도 배식을 하던 곳이겠지요?
1평 감옥.
빗장을 풀고 보니 참으로 비참했던 그날을 보는 듯했습니다.
태극기 녹판 3.1 운동 때 쓰일 태극기를 대량으로 찌기 위해서.
한일합방 조약문
동아일보
올려다본 2층 감시 통로 (출입제한구역)
옥사 내부
수갑 연도 미상 (일제강점기)
수형자 명단... 제일 먼저 유관순 열사가 보입니다.
옥중일기 (김규복 1933) 옥중서신
독방은 아닌 듯...
제12 옥사
제10 옥사
오만방자한 일본인 순사
투옥되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지사들.
여성 수감자에 대한 성고문
물고문
물고문
여성 애국지사 손톱 끝을 바늘로 쑤시고 곤 봉로 구타하고...
강제 날인, 허위자백 강요.
직관이라고 하는데 2~3일 갇혀 서 있으면 전신마비가 온다고 합니다.
움직일 수 없는 이 공간에 사람을 세워 놓고 고문을 하는 것이지요.
참으로 지독한 놈들입니다.
이리 지독한 자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저 악명 높은 나치가 일본인들보다 더할까요?
둘 다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조국이여!! 민족이여!!"
애국지사의 육성 증언
한센 병사입니다.
강제로 작업을 시킨 곳.
이곳에서 관용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로 한성과학고등학교가 보입니다.
인왕산도 보입니다.
무엇을 했던 곳일까요?
고문에 의해 죽어 간 애국지사의 추모비.
사형장은 촬영이 금지되어서 찍지 못했습니다.
사형장 안에 나무가 있었는데,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옆 건물인데 처형된 애국지사들을 이 문을 통해서 몰래 공동묘지로 옮겼다고 하네요.
"시구문"
마치 일본식 학교 건물 같지요.
1916년에 신축한 여성 옥사.
특히 유관순 열사가 이곳에서 신문과 고문 끝에 순국한 곳으로 일명 "유관순 굴"
이라고도 합니다.
인터넷을 하면서 우연히 카페에 올려진 사진을 보고
며칠 밤, 잠을 못 잤습니다.
중국인인지 한국인지는 모르는데,
생체실험을 하는 사진이었지요.
겁에 잔뜩 질린 남자를 일본인 몇 명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겁에 질린 눈을 저는 아직 생생하게 기합니다.
그 사진의 제목입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순국선열들의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넋을 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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