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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공주송산리고분 (2021. 7.27 )

 

*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 5-1

 

 

 

오른쪽 무령왕릉과 무령왕릉왕비 합장릉.

 

무령왕릉묘 입구

 

소나무 오른쪽 무덤 (무령왕릉 1971년 발굴)

 

5호분

 

 

 

5,6 호분

 

 

 


1,2,3,4 호분

웅진백제역사관

 

 

 

 

높이 130m의 나지막한 구릉인 송산에서 이름을 땄기에 예전에는 송산리였지만 지금은 금성동인 이곳에는 구릉 중턱 남쪽 경사면에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세 채와 네 채로 갈라져 고분이 모두 일곱 채가 뚜렷이 남아 있다. 동북쪽에 1호부터 4호분까지가, 서쪽에 5호와 6호분 그리고 무령왕릉이 있다. 그밖에도 봉분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지하에 많아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1호부터 6호까지의 고분들은 모두 일제 시대 때 발굴조사되었다. 1호분부터 5호분까지는 모두 자연할석으로 돌방을 쌓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인데 벽면에는 강회를 발랐다. 이것은 한성 시대부터 내려오던 백제식 무덤축조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6호분만은 벽돌을 쌓아 만들었고 네 벽에 진흙과 호분을 바른 위에 벽화를 그려 놓아 ‘송산리 벽화고분’이라고도 부른다. 벽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와 동그랗게 표시한 해와 달, 별들이 그려져 있다. 이 벽화는 부여 능산리 고분의 것과 함께 오직 둘뿐인 백제의 벽화이다. 오랜 세월의 습기 때문에 물감이 얼룩얼룩해지고 그림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고구려 벽화무덤에 그려진 사신도에 견주면 선이 매우 부드럽고 우아해서 역시 백제식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6호분은 벽화로 하여 송산리 고분군의 여왕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1971년에 무령왕릉이 밝혀지면서 세인의 관심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니 마치 쓸쓸한 퇴역배우 같아졌다. 이 6호분은 무령왕릉과 관련지어서 그 전왕인 24대 동성왕릉으로 보기도 하고, 그 후대 왕인 26대 성왕릉으로 보기도 한다. 4호분까지는 공개하지 않으나 5호분과 6호분은 입구를 공개하니 들여다볼 수 있다.(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