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여주 명성황후생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 46)

 

 

 

 

 

명성왕후는 현종의 부인.....

그러면 왕후하고 황후하고 어떻게 다를까요?

시대적으로 조선을 세울 때에 중국에서 자신들의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라고 해서 황제라 했고,

조선의 임금은 왕이라고 표명했답니다.

중국의 반식민지나 다름없었던 시대적인 조선의 상황에서 철종 떄까지는 왕이었고,

대한제국이 설립되면서 고종은 황제가 된 것이지요.

조선의 황후는 명성황후 (고종황제의 부인) 한 분.

오늘의 포스팅 주인공 입니다.^^

 

 

.

 

 

 

 

 

명성황후는 1851년 11월 17일 경기도 여주 근동면 섬학리(지금 능현동)에서 태어 났고,

1866년 16세의 나이로 고종의 왕비로 간택이 되었지요.

그리고 구한 말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는데

1895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당했고,

시대적인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명성황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어머니이시며,

고종황제의 정비입니다.

어려서 부터 글 읽기를 좋아했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옳고 그른 것을 밝히는 분별성이 있었고,

국모로써 당당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습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라 합니다.

 

 

 

 

 

 

 

 

 

 

 

 

 

 

 

 

 

 

 

 

 

 

 

 

 

 

 

 

 

 

 

 

 

 

 

 

명성황후 기념관입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으며 명성황후(明聖皇后, 1851~1895) 생가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어요.

 전시실은 면적 520㎡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 등의 유물·같은 시기에 활약하였던 여흥 민씨들의 유물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명성황후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홍릉은 제26대 고종(1852~1919)과 명성황후 민 씨(1851~1895)의 능.
조선왕릉은 제가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서 가서 보고 느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홍릉은 꼭 다녀 와야 할 곳이기도 하네요.







명성황후 생가 옆에 재현된 "민가마을"입니다.
아마 관광객들에게 기념품과 음식을 파는 곳이래요.






























아래 3장의 사진은 이미 제 블로그에 있는 종로 운현궁이예요.
왕비 간택후 명성황후가 살았던 곳이지요.
고종황제와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
바로 이 운현궁입니다.










아들을 낳지 못해서 노심초사 하던 명성황후는 어느 날 잉태를 하여 낳고 보니 왕자였어요.
너무나 좋아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황후이지만 기본은 소박한 한 여인이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런데....아뿔사!!
아이가 항문이 막혀 있더랍니다.
제중원을 통하여 알아본 결과 한 서양의사가 수술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왕손에 칼을 댈 수 없다고 대원군이 거절했대요.
생각이 달랐던 시아버지 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사사건건 부딪친 일화인데요.
국제정세에 밝았던 명성황후는 고종황제를 위하여 철저히 내조를 하게 되었으나,
자연스레 대원군과는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