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실업고 출신 로봇천재와 과학고 출신 수학 영재를 포함,
카이스트(KAIST) 학생 4명의 자살을 두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세상에서 일등을 달리고 있는 학생들이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움을 넘어서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카이스트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과학고를 2년 만에 마치고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머리가 뛰어나서 공부는 잘했겠지만
그들도 영락없는 19세 청년들이다.
초 중 고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패배에 대한 면역이 약해서, 또한 경쟁의 치열함을 못 견뎠을 수도 있다.
새벽 세 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도서관과 빡빡한 기숙사의
일정 속에서도 그들의 힘든 세상살이를 덜어 낼 공간이 있었어야 했다.
그것이 부모든 사회든 간에...... 장래와 이성에 대한 고민...
그들도 또래들과 똑같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을 치유해 줄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을 수 있는 공연과 예술 ,
여행 등으로 치유할 수 있었을 텐데 모두가 방치한 것은 아닐까?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높은 기대가 부담되지는 않았을까?
자살한 네 명의 학생들에게 거칠고 힘든 경쟁이 아닌
따뜻함과 행복한 삶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다면 말이다.
유명을 달리한 네 명의 우수한 카이스트 학생들도,
家를 이루고 아들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김웅용 씨 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부모님들께도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은 주지 않았을 텐데,
그저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