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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역사. 문화. 예술. 공연 .노래

예당호 출렁다리와 추사고택 (2024. 4.27)

*예당호 출렁다리... 충남 예산군 응봉면 후사리 39 

*추사고택...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2년 제주살이를 같이한 분들과 8개월 만에 충남 예산에서 만났습니다. 생각과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이라서 맛집도 찾아다니고, 오름과 관광지도 많이 다녔었지요. 이제 구미로~ 익산으로~내포신도시로 각자 둥지를 틀었습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이고 현재도 친척들이 많이 사셔서 고향 내포 신도시로 오시게 되었다는데요. 그 내외분 덕분에 예당호와 출렁다리, 그리고 추사고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제가 출렁다리를 갑자기 많이 봅니다. 논산 탑정호, 임실 옥정호에 이어 예당호 출렁다리까지요.

탑정호(왕복 1 km200 m), 옥정호 출렁다리(왕복 840m), 예당호 출렁다리(왕복 804m).....최근에 건설된 세 곳의 출렁다리는 모두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예산의 대표 관광지로 급부상했다는 예당호 출렁다리. 제가 방문한 날에도 관광객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예당호 출렁다리 공원에 설치되어 있었던 '모노레일'

이제 추사고택으로 갑니다.

안내 하시는 분이 오래전에 다녀 갔는데 너무 시설이 엉망이었다고 걱정을 하셨어요.그러나 사진이었던 예전 하고는 너무나 많이 변한 '추사고택'을 보고 놀라시더라고요. 살펴보니 보수는 했지만 형태는 바뀌지 않았네요. 사랑채와 안채...

추사고택의 솟을대문.

추사고택은 추사 김정희가 나고 자란 곳. 바깥의 솟을대문을 넘으면 곧 사랑채와 문간채가 나오며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주로 바깥 주인들이 대외활동을 하던 곳입니다. 

이 집은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이 정조대왕의 둘째 딸과 결혼하면서 하사 받은 집이라고 해요.

조선시대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대갓집 'ㅁ'자형 안채.

기둥마다 남색 글씨 추사체가 걸려 있는데 이를 '주련'이라 한대요. 그냥 정자로 써 놓은  한자도 잘 모르는데 한자 글씨가 기괴하더라고요. ㅎ 그러나 주련 밑에 글의 설명이 붙어 있어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그런 배려는 늘 감사하지요~!

추사고택 안채.

추사고택의 영당인데요. 추사가 사망한 후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아들 상우가 지었다고 합니다. 개방을 하지 않아서 자세히 보지 못했어요.

추사고택의 관리사. 이곳도 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정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영조의 사위)과 부인 화순옹주(영조의 둘째 딸)가 함께 묻힌 묘.

영조의 둘째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열녀문. 그녀는 13세의 나이에 김한신과 결혼했는데 김한신이 39세에 세상을 뜨자 열흘을 굶어 죽었고, 영조는 불효라며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으나 후에 정조가 열녀문을 내렸다고.

화순옹주 홍문에서 이곳까지는 도보로 꽤 많이 걸었습니다. 그래도 언제 또 와 볼거나~하면서 걸었는데요.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이 백송은 김정희가 25세 때에 청나라 연경에 다녀오면서 가져온 씨앗을 고조부 영의정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우리나라 몇 안 되는 희귀한 용궁리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대한민국 국보 제180호)'가 새겨져 있었던 백송공원 표지석.

역시 백송공원의 조형물 작품 제목도 '묵향과 필향'.....

오늘도 길을 나서면서 또 걸으면서 보면서 저는 많은 걸 배웁니다. 지면에 다 나열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과 추사 김정희가 남긴 작품과 그의 사상등을요. 정말 죽을 때까지 몰랐던 것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지요. 추사고택의 포스팅을  마치면서 역사학자 유홍준 박사님의 말씀이 인상 깊어서 납깁니다.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도 없다.'.....

이제 5월이 시작되었어요. 행사가 많은 감사의 계절. 좋은 일들만 가득한  5월이 되시기를요^^